지난 26일 오후 7시. 해가 서서히 기울자 행궁동 골목에는 하나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선선한 바람을 따라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분주했던 거리의 소음은 어느새 잦아들고, 은은한 막걸리 향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골목 끝 ‘행궁연가’ 간판 아래에는 익숙한 양조장이 아닌 하룻밤 영화관이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에는 캠핑 의자가 가지런히 놓였고, 머리 위로는 알전구가 하나둘 불을 밝혔다.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은 행궁동에서 다시 태어난 막걸리 ‘행궁둥’'를 한 병씩 손에 들고 자리를 찾았다.
다른 한 손에는 전통주와 어울리는 전과 과일, 떡이 담긴 다과 키트가 들려 있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마치 여름밤 피크닉을 나온 듯한 풍경이었다.
이날 수원양조와 수원도시재단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 ‘2026 담빛 시네마 with 행궁’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이병진 수원도시재단 이사장과 김미전 수원양조 대표, 김명균 감독, 배우 지대한·손지나를 비롯해 사전 신청한 시민 30여 명이 함께했다.
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GV), 지역 전통주 체험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진 이번 행사는 시작 전부터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이날 상영작은 김명균 감독의 감성 드라마 영화 ‘하우치(Hawuchi)’였다.
사업 실패와 가족 간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중년 남성 '하재학'이 30여 년 만에 첫사랑을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는 영화가 시작되자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붙들어 맸다.
웃음이 번지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미소가 흘러나왔고, 먹먹한 장면에서는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작품은 하재학 역을 맡은 배우 지대한의 실제 첫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의미를 더했다.
약 1시간 30분간의 상영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곧바로 김명균 감독과 배우 지대한, 손지나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행궁연가’라는 공간은 영화와 잘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장소”라며 “지대한 배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하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겠다”고 말했다.
손지나는 “첫사랑 역할이라는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며 “기존 영화관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문화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대한 역시 “악역 전문 배우로 활동해 왔지만 출연 기회가 쉽지 않았다”며 “직접 겪은 첫사랑을 바탕으로 영화를 2020년 제작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뒤늦게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끝까지 배우로 살아가며 만든 작품인 만큼 많은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느덧 스크린을 밝히던 영화가 끝나고, 잔디밭을 감싸던 알전구만이 여름밤을 은은하게 비췄다.
친구와 연인, 가족들은 막걸리 잔을 비우며 영화 이야기를 나눴고, 하나둘 행궁동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영화관이었던 공간은 다시 행궁동의 평범한 밤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던 김 대표는 “‘담빛 시네마’는 맛있는 술과 영화를 함께 즐기는 문화행사”라며 “영화 속에도 행궁연가 막걸리가 등장한다. 앞으로도 수원의 아름다움과 전통주, 지역 영화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심 속 마을기업 양조장과 문화가 어우러진 수원의 대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며 “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도 “담빛 시네마 with 행궁은 도시재생 거점공간과 지역자원을 활용한 원도심 문화 프로그램”이라며 “앞으로도 시민과 청년, 지역 상권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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