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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로터리] 집 사지 않아도 안심하고 사는 나라

주거는 삶의 기본이다. 내 집 마련은 오랫동안 국민의 꿈이자 자산형성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주거정책도 ‘내 집 마련’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1~2인 가구가 늘면서 이제 ‘내 집을 갖는 것’에서 ‘좋은 집에 안정적으로 사는 것’으로 주거정책도 전환해야 한다.

[로터리] 집 사지 않아도 안심하고 사는 나라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거는 삶의 기본이다. 내 집 마련은 오랫동안 국민의 꿈이자 자산형성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주거정책도 ‘내 집 마련’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1~2인 가구가 늘면서 이제 ‘내 집을 갖는 것’에서 ‘좋은 집에 안정적으로 사는 것’으로 주거정책도 전환해야 한다.

높은 집값은 이런 전환을 더욱 부추긴다.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KB부동산 기준 16억 739만 원으로 사상 처음 16억 원을 넘어섰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근로소득만으로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집 없이 평생 주거 불안에 시달릴 수는 없다. 주거 안정은 소유뿐 아니라 원하는 지역에서 적정한 비용으로 좋은 주택에 오래 거주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차가구가 전국 38.0%, 서울은 53.4%에 달한다.

임대시장도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공급체계는 여전히 소규모 개인 임대인 중심이다. 공공임대만으로는 늘어나는 1~2인 가구와 청년·신혼부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문기업과 장기자본이 참여하는 ‘매입형 장기민간임대시장’을 주택공급의 새로운 축으로 키워야 한다. 건설사가 지은 주택을 전문 임대사업자와 리츠(REITs), 보험사·연기금 등이 대규모로 매입해 장기간 임대·관리하는 방식이다. 주택산업 구조를 ‘건설→분양→개인소유’에서 ‘건설→전문기관 매입→장기임대→전문 관리’로 확장하는 것이다.

효과도 크다. 청년과 신혼부부는 과도한 대출 없이 도심의 좋은 집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건설사는 새로운 수요처가, 리츠·보험사·연기금에는 장기간 안정적인 투자자산이 생긴다. 주택을 단기 시세 차익의 대상에서 장기 임대 수익을 만드는 자산으로 바꾸는 효과도 있다.

일본의 임대산업도 참고할 만하다. 전문 관리회사가 입주자 모집, 임대료 수납, 시설 관리와 민원 처리를 담당하는 생태계가 발달했다. 정부는 관리업자 등록과 정보 제공 의무 등을 통해 임차인 보호와 사업자 책임성을 함께 높였다.

우리도 기업형 임대를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하나의 주거 서비스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네 가지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 매매와 10년 이상 장기임대 의무와 재무 건전성, 임차인 보호 요건을 충족하는 전문사업자와는 다른 금융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

둘째, 세제에서도 ‘다주택 투기’와 ‘장기임대사업’을 구분해야 한다. 장기임대와 임차인 보호라는 공적 책임에 상응하는 세 부담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임대료는 무조건적 동결보다 예측 가능한 관리가 중요하다. 초기 임대료와 인상률, 갱신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 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공모리츠 활성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선, 장기채 발행, 주택도시기금 출자·보증 등을 통해 보험사·연기금·국민 장기저축 등 장기자금이 임대주택 공급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 역할도 나눠야 한다. 공공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주거 안전망을 두텁게 책임지고, 민간은 도심과 역세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요에 맞는 양질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와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가 함께 ‘매입형 장기민간임대시장 육성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세제, 기관투자가 참여, 임대료 관리, 전문 임대관리업 육성과 임차인 권리 보호를 하나의 패키지로 담아야 한다.

청년에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선택지만 강요할 수 없다. 취업과 결혼,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10년, 20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좋은 임대주택이 충분하다면 그것 역시 훌륭한 주거복지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주거가 안정되는 나라로 가야 한다. 공공임대라는 든든한 안전망 위에 매입형 장기민간임대라는 새로운 축을 세워야 한다. ‘집을 사야 하는 나라’에서 ‘집을 사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로 주거정책의 폭을 확 넓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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