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 엘니뇨로 고수온이 이어지면서 산호가 대규모 백화 위기에 놓였다. 제주 바다에서도 이런 경향이 관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대 10억 명의 인류가 생계와 식량 안보, 문화적 정체성을 산호초에 의존한다. 과학자들은 수중 스피커로 산호 유생을 불러 모으고 열에 강한 산호를 심는 등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2024년 고수온 피해로 녹아내린 제주바다 연산호 (사진 파란)/뉴스펭귄
기록적으로 높은 수온과 슈퍼 엘니뇨가 겹쳐 산호 백화가 다시 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 등 국제학술지 발표 등을 종합하면 지난 8월 말 기준 미국 플로리다와 파나마 태평양 연안, 키리바시 인근 산호에서 백화가 관측됐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넓은 해역의 수온이 산호가 백화와 고열 폐사를 겪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수온은 내년 초 엘니뇨가 강해지면서 더 오를 전망이다.
이번 백화는 직전 전 지구적 백화가 지난해 끝난 지 1년도 안 돼 닥쳤다.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WHOI)에서 산호 복원팀을 이끄는 에이미 아프릴 박사는 이를 두고 ‘설상가상’인 상황이라며 몸이 아픈데 다른 병까지 겹치고 직장 스트레스까지 받는 상황에 비유했다.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올해와 내년 고수온이 과거보다 산호에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피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세계산호초감시네트워크(GCRMN)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년 전 세계 경성산호(단단한 골격을 가진 산호) ‘피복율’은 1980~2009년보다 9.5% 낮았다. 산호초 바닥 가운데 살아 있는 경성산호가 덮고 있는 비율인 피복율의 하락은 산호의 폐사와 어류 서식지 감소를 의미한다. 2024년 한 해에만 전년보다 8.9% 줄어 단일 연도 기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백화에서 회복하기 전에 다음 백화가 닥치면서 산호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백화는 산호 몸속에 사는 작은 조류(藻類·물 속에서 자라는 수초)가 빠져나가며 일어난다. 산호는 이 조류가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받아 살고, 산호의 빛깔도 이 조류에서 나온다. 수온이 오래 높으면 조류가 산호 몸 밖으로 나가고, 산호는 색을 잃어 하얀 골격이 드러난다. 백화가 곧 죽음은 아니어서 수온이 내려가면 회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수온이 길어지거나 회복할 시간이 모자라면 산호는 굶어 죽는다.
산호가 사라지면 바다와 해안이 달라진다
산호초는 해저 면적의 0.2%가 채 안 되지만 해양 생물종의 25% 이상이 이곳에 기대 산다. 산호가 석회질 골격을 쌓아 만든 복잡한 구조가 어류와 갑각류에게 숨을 곳이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바닷속 아파트 단지에 가깝다. 산호가 죽어 골격이 무너지면 그곳에 살던 생물도 줄어든다.
영향은 사람에게도 이어진다. GCRMN 보고서는 최대 10억 명이 생계와 식량 안보, 문화적 정체성을 산호초에 의존한다고 밝혔다. 산호초 지대의 어업이나 관광업이 많은 열대 해안 마을의 주요 산업이어서다. 산호초 관광으로 해마다 발생하는 수입은 360억 달러(약 48조2000억 원)로 추산된다.
산호초는 해안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도 한다. 열대 산호초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산호초에 부딪히며 힘을 잃으면서 파도 에너지의 97% 가량이 줄어든다. GCRMN은 산호초가 해마다 530만 명을 폭풍 피해에서 보호하며 그 경제적 가치가 1090억 달러(약 146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소리를 이용해 산호초를 복원하는 연구를 수행 중인 우즈홀 해양연구소 (사진 WHOI 동영상 캡쳐)/뉴스펭귄
소리, 미생물, 내열성 산호까지… 다양한 복원 시도
산호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방법은 소리를 이용한 기술이다. WHOI의 해양 생물음향학자 아란 무니 박사 연구팀은 산호 유생이 소리를 듣고 정착할 곳을 찾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유생은 길이 1mm가 안 되는 작은 생물로, 알에서 나온 뒤 물속을 떠돌다 바닥에 붙어 산호로 자란다. 연구팀은 건강한 산호초에서는 딱총새우가 내는 소리와 어류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 소리를 녹음해서 훼손된 산호초에서 수중 스피커를 이용해 틀었다.
2022년 시험에서 소리를 들려준 유생은 그렇지 않은 유생보다 평균 약 2배 많이 정착했다. 이후 버진아일랜드, 하와이, 도미니카의 산호초에서 한 시험에서는 소리를 튼 곳의 정착률이 평균 3배로 올랐고 일부는 8배까지 올랐다. 올해 산란기에는 버진아일랜드, 도미니카, 케이맨제도에서 시험하고 있다. 다만 정착률이 오른 것이 실제 산호 면적 증가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얼마나 먼 곳까지 효과가 미치는지도 밝혀야 할 과제다.
산호에 이로운 미생물을 입히는 방법도 있다. 사람이 유산균을 먹어 장을 돌보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다. 영국 더비대 마이클 스위트 교수에 따르면 홍해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산호와 함께 사는 미생물과 영양소를 섞은 처방을 시험하고 있고, 일부 조합은 산호의 열 내성과 질병 내성을 높였다.
열에 강한 산호를 번식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세계 최대 규모 산호초 군락인 호주 북동부 해안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대보초)에서 지난해 산호 유생 수억 마리를 번식시켜 바다에 내보내는 시범 사업이 진행됐다. 올해는 실험실에서 열에 견디도록 키운 공생조류를 산호에 넣는 시험을 한다. 미국 자연보호단체 네이처컨서번시는 팔라우, 마셜제도, 하와이에서 원래 열에 강한 산호초를 찾아 지도로 만드는 작업을 지원한다. 이런 산호초를 번식용 공급원으로 쓰려는 것이다.
여러 노력이 이어지지만 복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의 조반니 스트로나 박사는 “수온 전망이 낙관적인 경우에도 앞으로 10년간 곳곳에서 대규모 백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참여한 2025년 연구는 예산이 크게 늘거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복원만으로는 산호 감소를 막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산호 과학자들은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았다.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오르는 선에서 멈추면 일부 산호초는 반복 백화를 피할 수 있다. 2도 오르면 거의 모든 산호초가 정기적으로 심각한 백화를 겪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다. 아프릴 박사는 “복원 기술은 일부 지역에서만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6년 서귀포 범섬 가시수지맨드라미 주저앉음 현상 (사진 파란)/뉴스펭귄
제주 산호 ‘주저앉음’도 점점 많아져
산호에 대한 생태적 위협은 적도 태평양 뿐만 아니라 제주바다에서도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부터 서귀포 문섬과 범섬에서 진행한 15차례 수중 조사 결과 조사 면적 절반 이상에서 연산호가 주저앉은 것으로 관측됐다. 시민과학자 57명이 8월 18~22일 범섬 꽃동산과 문섬 만남의 광장 일대를 조사했는데, 한 달 전까지 건강했던 범섬 꽃동산의 밤수지맨드라미 거의 모든 개체가 늘어지거나 떨어져 나가 있었다.
연산호는 열대 산호초를 만드는 돌산호와 달리 단단한 골격이 없다. 그래서 고수온을 만나면 하얗게 변하기보다 몸체가 흐물흐물해져 처지다가 바위에서 떨어진다. 이를 주저앉음 현상(slumping event)이라고 한다.
파란에 따르면 2024년에는 양호했던 가시수지맨드라미와 흰수지맨드라미에서도 올해 제주에서 처음 주저앉음 현상이 확인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도 올해 연산호 주저앉음 발생 범위가 2024년보다 넓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 해역은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천연보호구역이자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이다.
제주에 자리 잡은 돌산호도 피해를 입었다. 파란은 2024년 이슈리포트에서 제주 바다가 백화를 피해 북상한 열대·아열대 산호의 마지막 피난처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범섬 본섬 앞 수심 7~10m에서 백화된 빛단풍돌산호가 다량 확인됐다.
수온도 높은 상태가 이어졌다.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은 지난 7월 13일 제주 연안 표층 수온이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약 1.3도 높다고 밝혔다.
2026년 서귀포 범섬 꽃동산 빛단풍돌산호 백화현상 (사진 파란)/뉴스펭귄
원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파란에 따르면 해양과학기술원 제주연구소가 지난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뷰'에 발표한 논문은 연산호 주저앉음의 원인으로 고수온과 중국 양쯔강에서 흘러드는 저염분수(염분이 낮은 바닷물)를 지목했다. 다만 파란은 올해 현상도 이 요인의 영향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태풍 뒤 퇴적물 유입, 세균과 기생생물 감염, 해상 매립 같은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범섬과 형제섬 9개 지점에서 수심별 수온과 염분을 최소 5년 이상 관측할 계획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2024년은 기록적인 수온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산호초에서 백화가 나타난 해다. 제주에서 연산호가 대량으로 쓰러진 해도 2024년이었다. 산호의 위기가 적도 부근 바다에 그치지 않는 셈이다.
파란은 산호 보호를 위해 문섬·범섬 밖의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주요 지점으로 조사를 넓히고, 국가유산청과 해양수산부가 '산호 이상현상 TFT'를 꾸리고, 위성곤 제주지사가 직접 나서서 산호 이상현상의 현장을 방문하고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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