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의 재활을 도왔다. 축구선수 기성용(포항)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황인범(페예노르트),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에서 유튜버로 변신해 괴물 같은 운동능력을 과시하는 윤성빈, 프로골퍼 최혜진 등등.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리스트만 쭉 봐도 쟁쟁하다.
이런 초특급 선수들의 재활 트레이닝을 해왔으니 뭔가 남 모를 '고강도 초정밀 비법'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게 없다. 어깨가 아프다고요? 힘 빼고 어깨를 천천히 크게 돌려보세요. 목이 아파요? 목을 도리도리해보고 위 아래로 끄덕여보세요. 아니 이런 게 해법이라고? 물론 그냥은 아니다. 근육, 인대, 관절 등의 협업을 고려해 정밀하게 조정한 동작이긴 하다. 하지만 어째 김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술 더 떠 이런 의문들에 대해 이렇게 되받아친다. "온 몸이 뻐근하도록 풀가동하는 것만이 운동이라는 우리의 고정 관념부터 버려야 한다"고. 땀에 흠뻑 젖어야 하고, 모든 힘을 다 써야 하는게 운동이 아니라, 설렁설렁 이런저런 가벼운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해보는 게 운동이고, 그렇기에 진짜 운동이란 건, 운동이 끝난 뒤 오히려 온 몸이 편안해져야 한다고.
설렁설렁 리듬운동으로 시작하자
역도 선수 출신으로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체력트레이너 등을 거쳐 한체대 스포츠의학 석사, 미국 오리건주립대 운동과학 박사, 미국 월라멧대, 국민대 교수를 거쳐 현재 차의과대 스포츠의과학대학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홍정기 박사의 얘기다.
홍정기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대학원장이 경기 판교 개인 트레이닝실에서 리듬운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판교=강예진 기자
'운동말고 움직임 리셋'을 시작으로 몇 권의 책을 쓴 뒤 최근 낸 책이 '홍정기의 리듬운동 통증해방'이다. 가볍게, 혼자, 설렁설렁하는 동작만 꾸준히 반복해도, 그것만 해도 충분히 운동이 되고도 남는다는 주장을 '리듬운동'이란 키워드로 정리해뒀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걸 꾹 참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런 통증없이 할 수 있는 동작을 천천해 해보는 즐거운 운동을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출간됐는데 벌써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홍정기 박사 주장은 일상 생활이나 운동을 하다 어디가 삐끗했다거나 아프다면, 거기에 해당되는 특정 부위만 집중 치료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몸의 균형과 흐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어느 정도 알려진 기성용 선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기성용은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다. 수술과 치료를 했는데 통증이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병원에서 무릎이 안좋다는 명확한 진단까지 나왔으니, 이대로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쩌면 은퇴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무릎이 아프면 발근육으로 부담을 나누자
SOS를 받은 홍정기 박사의 진단, 그리고 처방은 이랬다. 많이 뛰다보니 무릎에 문제가 생긴 건 맞다, 그런데 무릎의 문제는 무릎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관절과 발목의 협응 문제이기도 하다, 기성용의 달리기 폼을 분석해보니 발을 디딜 때의 문제가 크다, 그러니 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강해보자, 는 것이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기성용 선수는 여전히 현역이다. 무릎 부상, 수술로 많은 우려가 제기됐지만 홍정기 박사와의 재활 트레이닝 이후 10년 가까이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 스틸러스 제공
'무릎이 아프다는데 무슨 발?' 했지만 홍정기 박사의 트레이닝을 받은 기성용은 회복에 성공했고, 스페인 리그를 거쳐 "지금도 기량이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10년 가까이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무릎이 아프다고 무릎만 볼 게 아니라 발을 보강한 결과다.
이는 뇌와 신경계를 중시하는 것과도 상관있다. 기존 스포츠의학 관점에서 재활이라면 부상당한 부위를 치료하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뇌와 신경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통증에 겁을 먹은 뇌를 안심시켜야 한다. 통증 때문에 얼어붙은 몸은 지나친 긴장으로 그 부분을 더 혹사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난 널 그렇게 혹사시키지 않아'라며 살살 달래주는 작업이 먼저라는 거다.
운동의 핵심 "뇌를 안심시켜라"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리듬운동의 원칙은 크게 4가지다.
하나. 아프지 않아야 뇌가 안심한다
빨리 회복하고픈 마음에 부상 부위를 집중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부상부위를 과도하게 자극하면 통증이 악화될 뿐 아니라 뇌가 더 두려워하게 된다. 뇌가 무서워하면 알게 모르게 더 많이 긴장하고 힘을 주게 된다. 그로 인한 염증이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버려야 할 믿음
1. 통증을 참고 이겨내야 운동이 된다.
2. 통증없는 범위만 쓰면 몸이 굳는다.
3. 빨리 회복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
둘. 운동 후에는 편안해야 한다.
그래서 아프지 않게 재활한다는 건 쉽게 말해 '어? 이렇게 움직여도 큰 문제가 없네?'라는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안 그래도 힘들고 불편해서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또 혹사시켜서는 안된다. 운동을 한 뒤에도 큰 무리가 없이 편안한 상태가 돼야 한다.
셋. 힘을 빼고 움직여야 한다.
부상은 과한 자극으로 인한 것이다. 과하다는 건 객관적으로 과한 것일 수 있고,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는 과한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일단 자극을 최소화한 움직임에서 시작해 점점 넓혀나가는 전략을 써야 한다.
가져야 할 믿음
1. 위협을 느낀 뇌는 움직임을 제한한다.
2. 안전한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점차 허용 범위를 늘린다.
3. 회복은 천천히, 반복적으로 안전하게 진행돼야 한다.
넷. 협응이 살아나야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어느 특정 부위 하나로만 되는 게 아니다. 외부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에 반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건 몸 전체를 다 쓰는 과정이다. 그러니 특정 부위가 아니라 온 몸 전체를 다 봐야 한다.
그렇기에 리듬운동은 부상당한 프로 선수들의 재활 트레이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모처럼 운동하다 다친 사람, 남들처럼 격한 운동부터 시작하기는 부담스러운 사람, 본격적인 운동에 앞서서 내 몸의 상태와 운동 수준을 확인해보고 싶은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적당한 수준의 운동에 만족할 사람도 참고할 법하다. 경기 판교 차의과학대 인근 개인 사무실에서 홍정기 박사를 만났다.
운동은 슬쩍슬쩍 간식 먹듯 하자
-책에서 설명하고 QR코드로 따라해볼 수 있도록 해둔 리듬운동을 보면 솔직히 저게 운동이 되나 싶은데.
"운동이 된다. 요즘 워낙에 다들 안 움직이시니까. 하하. 사람이 다치는 건 운동하다 다치는게 50% 이상이다. 나를 찾아오는 분들은 대개 이제 뭔가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막 하다 크게 다친 분들이 많다. 필라테스 등록했다가 다리 근육이 찢어졌어요, 헬스 1년 끊었는데 두번 나갔다가 어깨가 나갔어요, 그런 분들이 오신다. 그런 분들께 제 나름대로 제안을 하는 거다. 그렇게 한번에 격하게 뭘 하려 들지 마시고, 살짝살짝 간식 드시듯 중간중간 브레이크 타임 때마다 조금씩 운동해도 충분하니까 무리하지 마시라는 거다."
-유명 스포츠 스타들 몸을 많이 만지신 분이라 더 반전인거 같다. 제안한 운동은 낮은 수준의 워밍업 같은데.
"아, 물론 프로 선수들 재활은 혹독하게 시킨다. 육체적 능력으론 최상급 수준으로 올라서 있는 게 프로선수들 아닌가.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다간 다친다. 뭔가 강한 훈련이 좋다 생각하니까 어디 가서 돈 내고 그런 걸 배우려 드는데,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리듬운동'이라 작명한 이유는.
"영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플로우(flow)다. 크게 힘 쓰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나오는 몸의 움직임이다. 이번 동계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알리사 리우의 피겨 연기 같은 걸 떠올려보라. 그 고난도 동작을 일일이 신경쓰면서 잘 해내려고 이를 악 물고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심취해서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때도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최우선으로 둬야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 금메달리스트 알리사 리우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밀라노=연합뉴스
-운동이라면 저항에 맞서 뭔가 한계를 뛰어넘어 힘을 쓰는, 그런 걸 떠올린다.
"그게 가장 큰 오해다."
홍정기 박사는 오십견이 와서 어깨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를 사례로 들었다. 아픈데도 어깨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어깨를 올릴 수 있는 만큼만 올린다. 이걸 반복적으로 20회 정도 하다 한 번 정도 약간 더 올려보고, 괜찮다 싶으면 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 또 조금 더 올려보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어깨의 가동범위를 늘려가야 한다. 한계를 넘어야 할 건 몸이 아니라 뇌다.
-살랑살랑 흔들흔들 작전이다.
"맞다. 몸에 힘을 빼고 안 아픈 범위 안에서 예전처럼 가볍게 가볍게 움직이는게 핵심이다. 그게 괜찮아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 다음 단계로, 그 다음 단계로 조금씩 단계를 올려가면서 활동 범위와 강도를 늘려나가는 게 좋다."
-운동이라면 팔 다리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피곤하게 해야 한다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다 어디 다쳐서 다 저한테 오신다. 선수들이야 기록내고 메달 따려고 그런다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나. 병원비나 잔뜩 나가지."
-효과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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