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화가
북중미월드컵경기에서 우리 팀은 엉성한 감독의 경기운영으로 말미암아 뼈아픈 결과와 치욕을 맛봤다. 이후 월드컵에 흥미를 잃었지만 그래도 아침시간에 경기 하이라이트는 본다. 브라질과 일본 32강전/2-1) 경기를 보면서 다행이라 여긴 건 일본이 패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앙금은 좀 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풀릴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것인가? 예선에서 남아공에 창피하게 패했지만 거기엔 앙금이 있을 리 없다.
그 남아공의 첫 흑인대통령이 우리도 잘 아는 넬슨 만델라(1918~2013)다. 그가 흑인인권운동을 하며 무려 27년 6개월 여를 감옥에 투옥됐다. 때문에 인간이라면 박탈당한 자유에 대한 북수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복수 대신 모두의 자유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백인 정권에 저항하면서 반정부인사로 낙인찍히며 젊은 나이(44)에 때 투옥 돼 늙어서(71)출감했다. 오랜 세월을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 살았을 그가 슬기롭게 성장한 것은, 고통 속에서 마음을 고쳐먹는 법을 터득한 까닭이다.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쥐고 있으면, 결국 자신의 마음까지 병들어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간으로 승화시킨 표본적 삶이었다. 이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 보통은 외부로부터의 강한 충격을 받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만델라는 좁고 차가운 감옥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의 이불을 반듯하게 개고, 책을 읽는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했다고 한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독였다는 건 내일을 위한 준비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15대 대통령 김대중(1924~2009) 또한 비슷한 조건하에 있지 않았던가. 견뎌내려는 노력이 승화되면서 새로운 철학이 싹텄고 성장했으며 담대해진 것이다. 분노를 사랑으로 바꿔내는 성자의 반열에 오른 때문일 것이다.
만델라는 출옥(1990)후 첫 일성이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였다. 그리고 그 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결국 그의 용기와 인내심이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무너트린 것이다. 이로써 그는 노벨평화상(1993)을 수상하게 됐고, 다음해에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면서 최초의 남아공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팔순이 넘도록 그림을 그려온 화가로써 공감하게 되는 건 증오와 미움을 털어낸 만델라의 마음공부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앞서 월드컵 축구의 패배원인의 하나로 인맥과 파벌에 찌든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꼽았었다. 감독을 자질과 인품을 우선해 뽑는 게 아니라 계파의 이득을 추구한 결과가 참담했음을 본 까닭이다. 그보다 축구계 원로들의 간섭으로 인해 대기업의 그늘에 기대려는 거지속성을 지금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절호의 찬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 성공을 위해 줄을 잘 서기를 배우고 뒤따르려 한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나 이걸 이겨내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줄을 잘 서려는 쪽은 견문이 좁고 배경에 약하며 경제적인 힘도 부족하다. 때문에 자신의 등 뒤에 늘어선 약자들을 보며 성공했음을 느끼기에 앞서 그들을 챙겨야 선배고 어른이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히딩크 감독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메시(아르헨티나), 음바페(프랑스), 케인(잉글랜드), 호날두(포르투갈), 홀란(노르웨이), 등을 보면 팀에서 그들에게 골 넣을 기회를 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적인 공격수 손흥민(1992~ )과 이강인(2001~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놈의 파벌 때문임을 이번에도 충분히 보고 느끼지 않았던가.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멋지게 만드는 마음공부를 위해 누구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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