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여년간 법조인력선발 및 양성의 근간을 맡아왔던 사법시험이 2017년 12월을 끝으로 폐지됐다. 평균 경쟁률 20대 1, 평균 합격률 3~5%라는 일회성 시험에 의한 선발을 지양해 고시낭인 및 다른 학부전공의 황폐화를 방지하고 교육에 의한 양성이라는 기치아래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로스쿨제도를 두고 고비용, 입시 불공정 등에 문제가 많다며 사법시험 존치 또는 예비시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이미 사법시험은 역사적 소명을 다했고 입법부가 새로운 제도를 정립한 만큼 더 이상의 사시존치 주장은 없어야 하며, 로스쿨에 문제점이 있다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사회적 힘을 모아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전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익명으로 사법시험 존치 운동을 해 왔다는 한 수험생이 ‘기회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본지에 “사법시험 존치와 유리천정”이라는 글을 보내온 바 있다. 그가 취업 후 실명을 밝히며 꾸준히 글을 보내오고 있다. 내용 전문(全文)을 게재한다. 본지는 이에 대한 반박 또는 이해를 달리하는 독자투고도 열려 있음을 거듭 밝힌다. - 편집자 주 -
조용호
직장인, 전 사법시험 준비생
1. 프롤로그
2024년 IT업계로 이직 후 2년여간 전국에 100여 곳 이상의 고객사를 방문했다. 출장 시 KTX와 SRT를 주로 이용한다. SRT 도입 시 △철도 민영화 우려 △‘알짜 노선’ 선점으로 인한 코레일의 경영 악화 등의 사유로 반대도 컸었지만, 이용자 관점에서만 보면 집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SRT와 많은 목적지를 운행하는 KTX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고객사를 방문해 AI 사업들을 제안하면, 현업 담당자들은 GPT나 Gemini 등이 범용적이고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사 △특화된 고유의 업무 △내부 민감정보 외부 유출 등을 우려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프라 가격을 감수하고 고객사 자체 인프라 구축(On-Premise) 형태로 사업을 추진한다.
위 2가지 흐름의 공통점은 “고객 중심 관점”에서의 변화다. 외뢰인이 AI를 활용해 법적으로 가려운 부분을 스스로 잘 긁을 수 있는 능력(‘AI 디지털 리터러시’)이 빠르게 함양되고 있다. AI 혁명 이전에는 포털사이트에서 지식 검색하면 일반적인 케이스에 대한 정형적인 답변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AI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이 좋아진 의뢰인들은 자신의 사례에 맞게 구체적인 질문을 프롬프팅(Prompting, AI에게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거나 지시)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문받을 때의 “검토 후 말씀드리겠습니다(적잖은 경우 전문성이 의심받을 수 있어 즉답이 어려울 때 하는 궁색한 멘트)” 보다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이하에서는 “우회로” 없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현재의 법조인 양성제도가 “고객 중심 관점”에서 왜 순리에 역행하는지 짚어보려 한다.
2. ‘법조인이 될 미래 꿈나무’와 고객인 국민을 위한 법조인양성제도 리모델링
(1)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 국민 소외는 유지된 채 ‘법조인이 될 미래 꿈나무의 진로 선택권’만 박탈한 로스쿨 제도
로스쿨을 나와야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기에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연고가 없는 지방에 소재한 로스쿨에 입학하기 일쑤지만, 졸업 후에는 결국 수도권으로 복귀한다. 로스쿨 도입 당시 큰 명분은 △국가 균형 발전 △로스쿨마다 특성화 분야를 지정해 지역 특화 법률가 양성 등이었지만, 로스쿨이 도입돼 1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다(제미나이를 활용해 작성한 무변촌 현황 인포그래픽 – 2026년 기준 변호사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
로스쿨에서 양질의 교육을 하고 있다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 로스쿨에서 반대할 이유가 크지 않다. 고액의 등록금과 대학 졸업 후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얻는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이 가치가 있다면 우회로가 있다손 치더라도 너도나도 로스쿨 입학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판단컨대 로스쿨이 우회로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짐작이 된다. 필자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법학과를 7학기 만에 수석졸업했다. 그런데, 2008년 처음 응시한 사법시험 1차 시험에서 △헌법 △민법 △형법 3과목 모두 과락(100점 만점에 40점 미만)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었다. 우회로를 만드는 순간 로스쿨 학위 취득 위한 수강이 변호사시험 고득점과 상관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통계로 검증되는 ‘판도라의 상자’ 가 열려 로스쿨 제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이것이 우회로를 필사적으로 막는 이유다.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우회로를 만들어준다면 여러 사유(△비상한 재능으로 대학 졸업하지 않고도 단기간에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한 인재 △경제적 어려움으로 로스쿨 입학을 고민하는 중산층 등)로 로스쿨 입학을 꺼리는 미래의 법조인 꿈나무들이 선택지를 두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학창시절 들어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이 필수 과목이었던 경우, 마지못해 수업에 들어가 다른 공부를 하거나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25개 로스쿨의 수업 수준은 천차만별이라 확신한다. 적잖은 학생들이 로스쿨 수업 이외 시간에 학원 수업이나 동영상 들으며 변호사시험 준비하고 있을 것이 뻔한 현실에서 누구를 위해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시험 응시자격 부여하는 것을 고집하는지 개탄스럽다.
(2) AI 혁명시대 법률서비스 소비자인 국민 관점에서의 법조인양성제도 리모델링
거대 언어 모델(LLM)은 이미 방대한 지식을 학습한 상태지만, 특정 목적에 맞춰 ‘전문화’가 필요해 파인 튜닝(Fine-tuning, 미세조정)을 한다. 비유하자면 방대한 법령과 판례를 습득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실무수습을 통해 직역(△판사 △검사 △변호사)에 맞게 연수를 받아야 한다. 꾸준히 전문성을 쌓지 않으면 도태된다. 예컨대, 공무원인 판사나 검사로 임용받았더라도 인사이동 때마다 담당 업무에 맞게 특화된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민원에 휘말릴 것이고, 변호사는 밥벌이가 끊어질 것이다.
변호사법 제109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의 업무(법률 사무)를 수행하거나 변호사를 사칭할 경우 매우 엄격한 처벌 규정(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두고 있다. 비법조인들은 변호사법이 변호사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오해하나, 변호사법은 변호사 아닌 자가 ‘변호사의 밥그릇’을 건드리면 처벌하는 법이다. 그런데 AI가 철옹성 같던 변호사법의 빗장을 푸는 판결이 2026년 3월에 있었다. 대법원은 AI를 활용한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가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AI가 계약서나 소장을 작성하는 것이 변호사법 제109조(비변호사의 법률사무 취급 금지)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형화된 양식을 완성하는 수준은 ‘구체적·개별적 사건의 법률 평가’로 보기 어려워 합법으로 판단했다. 이 판결로 인해 어디까지가 ‘단순 도움’이고 어디서부터가 ‘변호사만 할 수 있는 사무’인지 그 경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으나, 일반 국민들이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AI의 도움을 받아 법적 이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개연성은 높아졌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10년이 훌쩍 지나 다수의 국민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을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로스쿨 출신이 사법시험 출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케케묵은 의구심을 가지고 사법시험 출신 법조인인지 법조인명부를 검색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법률소비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이고, 그러한 자격함양 여부는 변호사시험을 통해 선별된다. 로스쿨을 가지 않더라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우회로를 검토하는 안에 대해서 무조건 반기를 드는 로스쿨 세력의 행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은 이미 AI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궁금해하는 법적인 이슈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방안을 가지고,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하기 위해 ‘변호사 쇼핑’을 하는 시대이다. 국민이 관심 있는 것은 법조인으로서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당해 사건을 충실하게 처리해줄 수 있느냐이지, 로스쿨을 졸업해 석사학위가 있느냐가 아니다.
(3) AI 혁명시대 IT 인프라 ‘수요와 공급 주도권’의 변화에 견줘본 법조시장
IT 인프라의 흐름은 효율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던 소프트웨어 중심(Software-Defined)에서 최근 AI 수요와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다시 강력한 물리적 성능을 요구하는 인프라 중심(Infrastructure-Centric)으로 재편되고 있다. AI, 특히 거대언어모델(LLM)의 등장은 기존의 범용 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연산량과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GPU(Graphics Processing Unit), NPU(Neural Processing Unit), HBM(High Bandwidth Memory) 등 특수 목적용 하드웨어를 적절한 시기(On time)에 공급할 수 있느냐가 AI 시대의 핵심 역량 지표이자 권력이 되었다. 인프라 업계는 기존에 규격화된 제품을 가격 후려치기로 싸게 제안해 ‘박스(Box) 영업’이라고 폄훼 받던 단순공급자의 지위를 벗어나 AI 풀스택(Full Stack, △사용자가 AI와 상호작용하는 화면을 만드는 Frontend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사용자의 요청을 AI 모델에 전달하며 비즈니스 로직을 처리하는 Backend △데이터 전처리, LLM과 이미지 생성 모델 선택, Fine-tuning, RAG 기술 등을 통해 비즈니스에 맞는 AI 기능을 구현하는 AI 모델 Layer 등) 기업으로 변모하려는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역학관계에 따라 동작한다. 법조시장에서 법률서비스의 수요자는 AI를 활용해 자신의 법적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여러 가지의 AI 모델을 활용해 교차검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의뢰인의 ‘AI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이 커짐에 따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법률정보가 단순히 양적으로 넘쳐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의뢰인의 특수 사안에 맞게 특화된 답변을 얻을 수 있도록 AI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프롬프팅 능력이 있다면 변호사의 도움 없이도 산재된 법률정보를 가공해 양질의 법률 AI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법조시장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과다 배출로 변호사 공급 과잉 상태다. AI 혁명으로 적잖은 법률 수요가 변호사 사무실로 유인되지 않고 AI로 대체될 것이기에 법조시장은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들조차 단순 소장 작성에 AI를 활용할 경우 신입변호사가 연수받을 수 있는 법무법인은 더 적어질 것이라 ‘핏덩어리 신입 변호사들’이 도제식으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급박하게 변해 가는데, 대한민국의 법조를 책임질 대학생들이 로스쿨 제도라는 틀에 갇혀 로스쿨 입시를 힘들게 통과하고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수업을 졸업학점 이수를 위해 수강하느라 세월을 허송하는 것이 안타깝다. 심지어는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로스쿨 입시를 위한 N수(시험에 여러 해 응시하는 것)를 하는 인재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답답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되는 것이 성경 구절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 왜 로스쿨에 입학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법학 공부를 할 자격을 주는 것이 부당한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3. 에필로그
청운의 꿈을 품고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하던 필자도 어느덧 예서와 소망(태명)이 두 딸아이의 아빠로서 기성세대가 되었다. 2009년 도입된 로스쿨도 벌써 17살이 되었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게 설계된 것이 타당한지 되짚어볼 시점이라 생각된다. △‘기회의 공정’과 ‘진로 선택의 기회’ 관점에서 맞는지 △국민의 기본권 보장 관점이 아닌 로스쿨제도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애지중지 여긴 나머지 사법시험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열위에 있지 않겠냐는 기우에서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게 문호(門戶)를 확 좁혀버린 것은 아닌지 △매년 변호사시험으로 1,700여명이나 선발하는데 변호사시험 합격자 정원 외에 별도 인원을 선발하기 위한 사법시험 부활이 아닌,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변호사시험으로 겨룰 기회를 달라는 절규를 외면한 채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온당한지 따져볼 일이다. 기성세대가 설계한 로스쿨만을 위한 법조인양성제도의 ‘우회로 원천 차단’이라는 똥이 부패해 미래의 꿈나무들을 질식시키기 전에 치워주기 위한 정책결정권자의 용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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