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타타그룹이 다 지은 공장 통째로 옮긴 사연
240만원 국민차 ‘나노’ 실패로 몰아간 印 포퓰리즘 야당
타타의 처절한 실패... 승자는 ‘지역 맹주’ 정치인
지선 앞두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주장에 업계 ‘초긴장’
靑·국회부터 지방정부까지 ‘역대급’ 정책 드라이브 예상
산단 이전 현실적 불가능 형편에도 반도체 업계 ‘전전긍긍’
美 트럼프 2기 ‘정치’, 기업 최대 리스크 부상... 韓 예외이길
이미지=삼성전자
인도 국민차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이 2008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누가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대더라도 다시는 싱구르에선 차를 만들지 않겠다"
당시 타타그룹이 인도 서벵골주 싱구르 지역에 건설 중이던 자동차 공장은 80% 이상 준공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타타 회장은 이 공장을 20000km 떨어진, 즉 인도 정반대쪽 구자라트주로 옮기기로 결단했다. 공장 내 설치된 조립용 로봇, 가공 계기는 물론 철골 기둥, 볼트 하나, 나사못까지 모조리 떼다가 통째로 옮겼다.
도대체 무엇이 때문이었을까. 바로 정치, 더 엄밀히는 포퓰리즘적 반기업 운동 때문이었다. 인도 제3정당이자 제2야당인 트리나물의회당(TMC)이 문제였다. 마마타 바네르지 TMC 대표는 지금도 인도의 가장 강력한 야당 지도자로 손꼽힌다. 서벵골주는 바네르지의 절대적 지지 기반이다. 그가 "농민의 땅을 돌려준다"며 이미 다 지어가는 공장의 토지보상 무효를 주장했다. 심지어 농민들을 대거 동원한 폭력 시위마저 선동했다.
타타그룹이 싱구르 지역에 건립 중이던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경차 '나노'를 생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당 한화로 240만원 수준의, 인도 중산층이라면 누구라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라탄 타타 회장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모델이다.
그렇게 우리 돈 4000억원을 들여 준공을 앞둔 공장은 이전 비용으로만 1000억원 이상의 추가 손실을 기록했다. 차량 생산이 늦어지면서 출시 지연이 겹쳐 나노 모델의 마케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타타의 싱구르 공장 부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잡초만 가득한 폐허로 지금까지도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서벵골주 자체가 기업 하기 힘든 지역으로 낙인 찍히며 인도 전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늘 거론되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타타그룹의 나노 공장 이전 소동으로부터 승자가 있긴 한 것일까. 당연히, 있다. 마마타 바르네지 본인이다. 그는 이 반강제적 공장 이전을 정치적 성과로 대대적으로 포장했다. 2010년 서벵골주 주총리로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도 그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농민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맞수로 평가될 만큼 본인의 영향력은 확실히 키웠다.
SK하이닉스 용인 산단 부지조성 현장. 사진=SK하이닉스
포퓰리즘 구호에 기업·산업 황폐화... 승자는 누구?
타타그룹의 이같은 사례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기업과 지역경제에 해악을 끼치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결코 인도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단위 선거마다 포퓰리즘 공약들이 난무했다는 사실은 국민 누구든 익히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대표적인 구호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600조원, 360조원을 투입해 용인 처인구 일대에 반도체 산단을 구축 중이다. 1000조원이 투입된 사상 최대 첨단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다.
부지 조성이 80%가량 진행된 SK하이닉스 산단과 토지 보상이 한창인 삼성전자 산단을 전북 새만금, 또는 전남 일대로 이전하자는 게 여당 지방선거 출마 경선 후보들의 주장이었다. 야당에서조차 대구·경북 일대로 이 산단을 일부나마 옮겨오자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이 이미 상당 부분 이뤄진 단계로 이전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반도체 업계는 불안하기만 하다. 임기 1년이 채 안 된 청와대의 강력한 리더십과 단독으로 과반을 훨씬 웃도는 여당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전국 지방정부까지 힘을 보탤 수 있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5극 3특'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실현할 방법론에 반도체 산단이 포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제기되는 것이다.
용인 클러스터 이전론이 제기되는 배경은 그 무엇보다 이 지역균형 발전이다. 수도권 일극의 경제 집중과 지역 공동화를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지역별 기업 유치와 산업 발전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수를 늘려야 인구를 유지할 기반이 만들어진다. 이대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로선 가뜩이나 부족한 인구의 급감으로 아예 소멸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정책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장(팹) 1기 건설에만 수십조원이 소요된다. 토지 보상과 부지 조성에만 줄잡아 최소 2~3년이 소요된다.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는 가장 높은 수준의 클린룸과 전력 설비, 초순수 공급망, 수많은 배관장치 등 고도의 인프라가 요구된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비롯한 첨단장비 발주부터 수령에만 수년이 걸린다. 이것들을 최적의 수율에 적합하도록 조율하는 데만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 기술 트렌드가 바뀔 수 있다. 시장 자체의 사이클이 하강기로 접어들면서 공장 첫 가동부터 막대한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 반도체 공장 1기 설립에도 매우 신중한 검토가 거듭되는 배경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하루 아침에 뚝딱 결정된 게 아니다. 세계적인 AI 대전환 흐름 아래 기업들의 치밀한 판단과 역대 정부의 지원이 맞물린 결과다. 포퓰리즘적 구호로 산단 조성 계획을 뒤흔들기엔 한국경제 전반의 너무 큰 미래가 걸렸다. 정치가 기업과 산업, 지역과 국가의 경제를 언제든 파탄낼 수 있는 시대다. 타타그룹의 나노 공장은 그 극히 작은 사례일 뿐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세계적인 관세 압박과 전쟁으로 각 국의 경제와 산업이 뒤틀리는 광경을 매일 목도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정치만큼은 우리 기업과 산업을 흔들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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