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는 다르다”··· 삼성전자, 노조 영업익 15% 요구에 난색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나비효과··· K반도체 생태계 흔들린다
“성과에 대한 보상인가, 이익의 배당인가”··· 본질 흐려진 성과급 논쟁
3년 전만 해도 삼성전의 주가는 5만원 대에 머물러 있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고, 법인세 납부액은 0원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몰락의 먹구름을 뚫고 부활했다. 지난 21일 삼성전자 주가는 22만원 선을 뚫으며 신기록 경신을 이어갔다. 중동전쟁의 위협까지 간단히 눌러버린 비결은 무얼까.
그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자" 였다. 삼성전자는 위기를 뚫기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의 길을 택했다. 과거 고 이병철 창업 회장의 반도체산업 진출과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신경영' 선포 등 삼성의 운명을 바꾼 결단의 공통점은 바로 산업 경쟁력의 기본인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였다.
최근 반도체 업황이 가파른 호조세를 보이며 '슈퍼 사이클'의 입구에 들어섰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상징인 삼성전자는 도리어 거센 풍랑을 만났다. 실적 개선이라는 단비 뒤에 등장한 유례없는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삼전노)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노조의 이런 요구는 단순한 이익 공유의 차원을 넘어 회사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SK하이닉스 방식 삼성전자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
노조가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하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만큼, 삼성전자 역시 동일한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산업의 복합적인 구조를 간과한 단편적인 비교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사업 구조를 가진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시스템LSI, 모바일, 가전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복합 기업이다. 삼성의 기본 운영 원리는 특정 사업부에서 발생한 이익을 미래 먹거리인 다른 사업부의 투자 재원으로 수혈하는 구조다.
최근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낸 이익은 당장 분배할 현금이 아니라, 7세대 HBM 개발과 생산, 1나노 공정 전환 등 차세대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생존 자금이다. 특히 산업의 특성상 파운드리 1나노 공정 개발에만 수조 원이 투입된다. 그래서 영업이익의 15%를 고정적으로 떼어내는 방식은 반도체 산업의 투자 특성과 맞지 않는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금 벌어들인 돈을 성과급으로 과도하게 배분하면 2~3년 뒤 기술 경쟁을 이어갈 자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멈추면 안되는 라인 ··· 파업이 부를 30조원의 재앙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연속성의 미학'이다. 수백 단계의 웨이퍼 공정 중 단 한 구간이라도 정지하면 진행 중인 웨이퍼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이번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생산 차질과 고객 이탈 등으로 인한 직간접적 손실이 최대 20조~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전노가 예고한 파업은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파업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쓸 돈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하겠다는 철없는 협박이다.
특히 신뢰가 생명인 파운드리 사업부의 타격은 치명적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가 생산 불안을 이유로 TSMC로 돌아서면 그 관계를 되돌리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사측이 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강경 대응에 나선 이유도 이 같은 리스크가 기업의 존립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투자는 단일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 전체의 젖줄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십조 원의 설비투자를 집행한다. 이 투자는 국내 장비사와 소재사, 부품사 매출로 이어진다. 성과급 부담이 커질수록 설비투자 여력이 준다. 결국 협력사의 매출 감소와 일자리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1일 준감위 정례 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삼성은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이라고 강조한 점도 이러한 사회적 책임감을 역설한 것이다.
'성과'를 따지지 않는 성과급, '배당'으로 변질
현재의 실적이 과연 현직 임직원만의 공(功)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전무후무한 이익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산업단지 인프라,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공급 같은 공공의 기반이 떠받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그래서 임직원은 물론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 얻은 결과물인 것이다. 주주 배당액(11조 1,000억 원)을 압도하는 수준의 성과급 요구가 사회적 공감을 얻기 힘든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보상의 형평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과급은 직무와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이어야 하지만, 현재의 논의는 전체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자는 '배당'의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거대한 이익을 창출하는게 결정적 역할을 한 핵심 연구원과 일반 직군이 동일한 비율의 보상을 받는 구조가 굳어지면, 인재들은 차등 보상이 확실한 해외 빅테크 기업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직무와 책임, 기여도를 무시한 채 동일한 잣대로 나누는 보상은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성과를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지우는 순간 조직의 동력도 함께 사라진다.
이번 논쟁은 삼성전자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에서 순이익의 30%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례를 기준으로 다른 대기업 노조까지 동일한 방식을 요구하는 '성과급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해법은 투명한 '기준'의 정립에 있다. 노조가 문제 삼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 성과급 산정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상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 창출과 연동되도록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몫'을 챙기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기업의 체력이 약해지면 그 피해는 결국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신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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