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력 산업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성과급 기준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됐고, 포스코는 하청 근로자 직고용 문제로 노사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단체행동 가능성이 거론되며 산업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이제 협상보다 '세력 대결'에 가까운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노사 양측이 각자의 명분을 앞세워 충돌하는 사이,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확한 표현은 '살계취란(殺鷄取卵)'이다. 계란을 얻기 위해 닭을 잡는다는 의미로,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기적 경쟁력이라는 기반을 훼손하는 선택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임금·단체협상 차원을 넘어선다. 하청을 넘어 원청을 직접 겨냥한 교섭 요구가 확산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변화가 맞물리면서 노사 관계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사용자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으면서, 원청을 교섭 당사자로 포함시킬 여지를 넓혔다. 노동권 보호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해석 충돌은 현장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비롯된 불합리, 원청 중심의 이익 배분, 제한된 교섭권은 오랜 기간 누적된 구조적 과제였다. 지금의 움직임은 그간 억눌려온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권리 회복'을 넘어 '협상력 극대화' 경쟁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힘겨루기가 현재의 경제 환경과 과연 부합하느냐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고금리 장기화, 수요 둔화, 공급망 불안, 보호무역 강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기업들은 투자와 비용 통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차질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거래선 이탈과 시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편입된 산업에서는 한 번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복되는 파업과 갈등은 한국을 '리스크가 큰 생산기지'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국가 경쟁력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책임을 노동조합에만 돌릴 수는 없다. 경영진 역시 성과 공유와 소통 측면에서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호황기의 과실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누적됐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의 '고통 분담' 요구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몫의 배분'이 아니라 '파이의 유지와 확대'다. 그러나 지금의 노사 관계는 제한된 몫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이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구조적 균형이다. 노동조합은 권리 행사와 산업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현실적 접점을 찾아야 하고, 경영진은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 구축에 나서야 한다. 특히 △성과 공유 기준의 사전 합의 △원·하청 간 책임 구조의 명확화 △파업 이전 단계에서 작동하는 분쟁 조정 시스템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파업의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 권리가 산업 기반을 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될 때,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커진다. 지금의 힘겨루기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끝에 무엇이 남을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사 모두가 '같은 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 '살계취란'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서종열 산업 에디터(부국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