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가 목격한 전쟁, 200년 넘어 대구에 오다
스페인 전쟁 참화 41점 첫 공개
벨기에 리드미술관 기증·소장
렘브란트 관련 전시 계기 ‘인연’
전시작 관통 핵심은 ‘목격’의 힘
전쟁 기록 넘어 의미까지 ‘선명’
선·압흔 등 냉정한 시선도 전달
대구미술관이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 전시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전쟁은 역사책에 기록되지만, 그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과 고통은 쉽게 사라진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판화 연작 ‘전쟁의 참화’는 바로 그 사라지는 장면을 붙잡은 작품이다. 영웅이나 승자의 서사가 아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죽음과 굶주림, 폭력을 화면에 새긴 고야의 판화 41점이 대구미술관에 소장돼 처음 공개된다.
대구미술관은 개관 15주년을 맞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를 내년 2월 14일까지 6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 82점 가운데 41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작품은 벨기에 리드 미술관의 기증으로 지난 2월 대구미술관 소장품이 됐으며, HD현대중공업이 운송을 후원했다. 리드 미술관의 이번 기증은 한 개인의 수집이 공공의 컬렉션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소장품 확보의 배경에는 리드 미술관과 대구미술관의 인연이 자리한다. 리드 미술관의 대표 해리 루텐은 고야를 비롯해 뭉크 등의 판화를 꾸준히 수집해 온 컬렉터다. 리드 미술관은 1980년대부터 작품 수집을 시작해 판화 중심의 컬렉션을 구축해 왔으며, 대구미술관과도 이전부터 전시를 통해 인연을 이어왔다.
특히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렘브란트 관련 전시를 계기로 미술관의 전시 환경과 운영을 직접 경험한 것이 이번 기증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구미술관 역시 이번 기증을 계기로 18~19세기 유럽 미술의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대구에서 연구하고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번 전시는 기증받은 작품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고야의 생애와 당시 스페인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작품과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리드 미술관 관계자는 “한국과 오랫동안 이어온 인연을 바탕으로 중요한 작품을 더 많은 관람객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죽음의 수확, Harvest of the dead (Muertos recogidos)
◇ 궁정화가의 성공 뒤에 자리한 또 다른 시선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초상을 그린 궁정화가였다. 1789년 궁정화가로 임명되면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1792년 큰 병을 앓고 청력을 잃으면서 크게 달라진다.
주문받은 회화와 별개로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담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판화는 그에게 보다 자유로운 예술적 공간이 됐다.
작품 ‘전쟁의 참화’는 180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고야는 전쟁으로 발생한 학살과 폭력, 굶주림과 죽음을 바라보며 이를 판화에 담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전쟁의 승패나 영웅적 행위보다 이름 없는 민중에 있었다. 이는 화면 속에 희생자의 몸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다.
전시는 ‘전쟁의 참화’를 ‘전쟁’ ‘기근’ ‘암시적 카프리초’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장면에서 인간의 몸은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놓이고, 이어지는 기근에서는 굶주림에 지친 군중과 시신이 화면을 채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모순은 마지막 ‘암시적 카프리초’에서 풍자와 우화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특히 고야는 전쟁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화면 속 죽음은 구체적이고 육체적이다. 잘린 신체, 처형당하는 사람들, 길거리에 쌓인 시신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명사가 결국 개별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I saw it (yo lo vi)
◇ ‘나는 그것을 보았다’…기록에서 증언으로
그의 연작을 관통하는 핵심은 ‘목격’이다. 고야는 44번 판화에 ‘나는 그것을 보았다’는 문구를 새겼다. 이는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기보다 누군가가 보았고, 그렇기에 기록해야 한다는 증언의 태도다.
고야의 판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느냐만큼 어떻게 그렸느냐에도 있다. 동판에 선을 새긴 뒤 산으로 부식시키는 에칭 기법을 활용하고, 필요에 따라 여러 차례 선을 새기고 부식하면서 명암과 밀도를 만들어냈다. 짙은 검정과 날카로운 선, 거칠게 뒤엉킨 인간의 몸은 화면에 불안과 긴장을 만든다. 회화의 붓질과는 다른 판화 특유의 선과 압흔이 고야의 냉정한 시선을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은 대부분 1906년 인쇄된 네 번째 판본이다. ‘전쟁의 참화’는 1810~1820년 제작됐지만 고야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고, 작가 사후 35년이 지난 1863년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는 “고야의 생애와 당시 스페인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고야라는 한 예술가의 삶을 이해해야 ‘전쟁의 참화’가 단순한 전쟁 기록을 넘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의 이야기였다.
연작의 마지막에 이르면 ‘진리’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은 진리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바라보는 가운데 한 인물만이 그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암시된다. 참혹한 현실을 끝까지 바라본 고야의 시선이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지점이다.
대구미술관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도 ‘목격’의 힘이다. 200여 년 전 스페인의 전쟁을 다룬 판화지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과 그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닮아있다. 고야가 판화에 새긴 ‘나는 그것을 보았다’는 말은 오늘의 관람객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보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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