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형 객원논설위원·행정학 박사
스포츠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 오르는 것은, 관련 분야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능력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으로 최고의 명예이자 훈장이다. 따라서 그 무게는 천금보다 무겁고, 위상은 더할 나위 없이 높다. 하지만 최근 막을 내린 202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부 구기 종목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그들이 얻은 영광스러운 승리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폄훼하게 만드는 씁쓸한 뒷맛과 깊은 성찰을 남겼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일파만파로 번져 급기야 해당 분야 ‘병역특례 제도 폐지론’이라는 거센 불을 지피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속에서 병역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 남자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그럼에도 스포츠 분야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병역특례를 제공하는 것은, 국위선양에 기여한 인재들에게 경력 단절이 없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여 국가적 역량을 극대화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역특례 제도는 1973년 ‘병역 의무의 특례 규제에 관한 법률’을 통해 도입된 이래, 각종 논란 속에서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킨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WBC 준우승으로 병역 혜택이 확대된 적도 있지만, 현재는 예외 없이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만 그 대상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국력 신장과 함께 올림픽과 달리 더 이상 아시아 최고 수준의 절대적 무대가 되지 못하고 있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 경쟁국들은 미래를 대비해 21세 이하 유망주나 2군 선수들을 내보내며 세대교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병역 혜택이 걸린 우리나라는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일부 종목의 경우 선수단을 최정예 멤버가 아닌 병역 혜택받아야 할 선수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해당 분야에서는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지 모르나 국민 정서의 눈높이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런 선수단 구성을 두고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합법적 병역 비리 행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누적된 불신과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받게 된 일부 주역들의 철없는 언행이었다. 이들이 거둔 금메달의 성취는 마땅히 축하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의 경솔한 언행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해묵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특례 혜택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경기 직후 승리의 기쁨에 심취한 나머지 국위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보다 “군대 안 갑니다”, “메달이나 트로피는 중요하지 않다, 군 면제라는 보상 하나만 보고 뛰었다”라는 발언은 국민의 상식과 정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해외파 선수는 SNS에 전역모를 착용한 인증 사진을 올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또 다른 금메달 획득 종목 대표팀 역시 과정보다 결과만 강조하는 안일한 태도로 질타받았다. 비록 이들이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은 뒤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번 뱉은 말과 행동이 가져온 후폭풍은 거세다. 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은 그들의 승리에 대한 축하보다 국민의 분노를 가져왔고, 이에 편승한 정치권 역시 여야를 불문하고 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또한 정부도 예술·체육요원 병역 특례 제도의 감면 및 폐지를 포함한 전면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따라서 이 제도에 대한 축소 또는 폐지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장난삼아 던진 돌에 연못 속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이 누리는 성취와 특혜가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망각한 채, 사소한 일탈과 경솔한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그 파장은 사회 전체를 뒤흔들 만큼 무섭게 확산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가벼운 한마디가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수많은 청년과 현역 장병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병역의 공정성을 염원하는 국민에게 실망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그릇된 태도가 제도의 폐지로 이어질 경우 앞으로 정당하게 땀 흘려 기회를 얻어야 할 후배 선수들의 미래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과멸존(小過滅存)이다. 작은 과오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성취에 도취해 저지른 가벼운 언행 하나가 얼마나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올 수 있는지, 그리고 후배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게 될 것인지를 이번 사태는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태극마크의 진정한 무게는 메달의 색깔에 따라 주어지는 병역 혜택이라는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들의 품격과 책임감에 있음을 선수들은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석형 객원논설위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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