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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구논단] 경부고속도서 AI고속도까지: ‘자본재정 분리’가 메가프로젝트 살린다

1968년 2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km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첫 삽을 떴을 때 대한민국 안팎의 여론은 싸늘함을 넘어 거센 비난 일색이었다.

[대구논단] 경부고속도서 AI고속도까지: ‘자본재정 분리’가 메가프로젝트 살린다

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1968년 2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km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첫 삽을 떴을 때 대한민국 안팎의 여론은 싸늘함을 넘어 거센 비난 일색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이던 시절, 단일 토목공사에 국가 1년 예산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429억 원을 쏟아붓는 일은 무모한 도박으로 비쳤다. 야당 정치인들은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쌀과 비료를 살 돈도 없는데 호화 아스팔트가 웬 말이냐”며 맹폭을 퍼부었고, 국제기구와 외국 차관단조차 타당성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1970년 7월 전 구간이 개통된 이 길은 산업화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물류 혁신으로 수출 드라이브의 심장을 뛰게 했고, 포항의 철강과 울산의 자동차·석유화학을 수도권 및 주요 항만과 직결시키며 ‘한강의 기적’을 일군 물리적 인프라가 되었다. 당시 단기 회계장부상 ‘적자의 주범’이었던 사업이 실상은 반세기 이상 총요소생산성과 국부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역대 최고의 자본 투자’였음이 증명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대한민국 경제는 다시 문명사적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이번에는 콘크리트 도로가 아닌 ‘인공지능(AI) 신경망 고속도로’와 초격차 에너지·물류망이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국가의 명운을 건 테크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미·중 등 주요국은 대규모 GPU 컴퓨팅 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AI 연산을 감당할 전력망과 원전 생태계 구축에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신산업 거점을 분산 배치하기 위한 한국의 3대 메가프로젝트(신공항·메가 철도망, 초고압 송배전망, 탈탄소·원전 클러스터) 역시 백년대계를 책임질 과제다.

문제는 이들 프로젝트가 공유하는 고유한 특성이다. 초기 투자 규모는 수조에서 수십조 원에 달하지만 초기 현금흐름은 미미하고 회수 기간은 수십 년이 걸리는 전형적인 ‘저수익·초장기(Low-yield, Ultra long-term)’ 공공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민간 단기 자본은 높은 리스크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기에 국가재정의 선제적 마중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현행 단일 통합재정 체계는 이러한 미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공무원 인건비, 행정비, 복지비 같은 ‘소비성 경상지출’과 인프라 구축, R&D 같은 ‘생산적 자본지출’을 한 바구니에 넣고 단일한 적자폭과 부채비율로 묶어버린다. 그 결과 재정건전성 압박이 가해질 때마다 정치적 반발이 큰 복지 예산 대신, 당장 표심과 먼 초장기 SOC와 R&D 예산이 먼저 잘려 나가는 ‘구축(Crowding-out) 효과’가 반복된다.

이 교착상태를 타개할 해법이 바로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일반재정(경상예산)과 자본재정(투자예산)의 분리(Fiscal Separation)’ 구상이다.

블랑샤르는 지출 성격을 ‘현재의 소비’와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엄격히 나누자고 제안한다. 당해 연도에 소모되는 경상예산은 조세 수입 범위 내에서만 집행하는 엄격한 ‘균형재정(Pay-as-you-go)’을 적용하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자본예산은 장기 국채 발행을 통한 적자 조달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 분리 운용은 메가프로젝트에 세 가지 정책 정당성을 부여한다. 첫째, 세대 간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의 회복이다. 수십 년간 국가 생산성을 뒷받침할 AI 연산망과 기간 인프라의 혜택은 미래 세대가 더 크게 누린다. 초기 건립 비용을 현재 납세자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30~50년 만기 국채를 통해 비용을 미래 세대와 분담하고, 그들이 누릴 성장 과실로 빚을 상환하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둘째, 정치적 근시안 탈피와 사업 연속성 확보다. 5년 단임 정권이나 1년 단위 예산 심의로는 10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를 완주하기 어렵다. 자본예산 계정을 독립시켜 다년도 자금 조달 계획과 연계해야 정권 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일관성이 생긴다.

셋째, ‘독립적 재정기구(Fiscal Council)’를 통한 회계적 분식 방지다. 정치권이 선심성 복지를 ‘미래 투자’로 둔갑시키는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독립적 전문가 기구가 기술영향평가와 생산성 기여도를 엄정히 검증한 사업에 한해서만 자본계정 채권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중화학공업화의 길을 연 물리적 토대였다면, AI 인프라와 3대 메가프로젝트는 인공지능 대전환(AX) 시대를 이끌 디지털 신경망이다. 획일적인 단일 금고와 단기 재정 잣대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경상지출에는 엄격한 고삐를 죄되, 국가 미래를 바꿀 메가프로젝트에는 자본재정이라는 담대한 날개를 달아주는 재정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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