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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단독/ 정관 김복진 묘비, 31년전 첫 모습으로 다시 서다

“오는 8월 18일이 정관 선생의 기일입니다. 묘비석 복구를 위해 청주시에 수차 제안을 넣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이 상태로 지나기에는 조각계 큰 어른에 대한 예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단독/ 정관 김복진 묘비, 31년전 첫 모습으로 다시 서다

▲지난 4일 고정수(왼쪽) 조각가와 지경수 청주미술협회장이 정관 김복진 선생 묘비를 복원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는 8월 18일이 정관 선생의 기일입니다. 묘비석 복구를 위해 청주시에 수차 제안을 넣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이 상태로 지나기에는 조각계 큰 어른에 대한 예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조각가 정관 김복진(1901~1940) 선생의 묘비가 1995년 세워질 당시의 최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지난 4일 묘비 제작자인 대한민국 원로 조각가 고정수(80) 작가는 지경수 청주미술협회장과 함께 동양일보를 방문해, 샌딩작업으로 깨끗이 세척한 묘비석이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음을 알렸다.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 팔봉산 기슭에 자리한 선생의 무덤 앞 묘비는 31년 전 김복진 서거 55주기를 맞아 서울의 조각가들과 미술계 관련 인사를 주축으로 결성된 ‘정관 김복진선생 기념사업회’가 추진한 첫 추모사업의 결과물이다.

서울 다도화랑(관장 이성훈)의 기탁금 1억3000만원을 마중물로, 묘비 제작은 조선대 교수 재직 시절 선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선생의 작품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고 작가가 맡았다.

규모는 전체 2m 높이의 오석으로, ‘정관 김복진의 무덤’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중심 기둥에 선생의 얼굴을 조각한 자연석을 갓석으로 올린 독특한 형태다. 특히 갓석은 가로 1m, 세로 70㎝의 타원형으로, 절반에는 김복진 선생 얼굴을 부조하고 나머지 절반에는 ‘사람은 역사 속에 산다’는 선생의 어록을 새겼다.

묘비 뒷면은 선생의 간단한 이력과 선생의 조카 김복희(팔봉 김기진 평론가의 딸) 여사, 선생의 묘소를 처음 찾아낸 정창훈 조각가, 지역에 선생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조철호 당시 동양일보 사장 등 회원과 관련 인사 58명의 명단을 기록했다.

그런데 5~6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파손이 일어났다. 갓석이 본체와 분리돼 땅에 나동그라진 것이다. 이에 오랜 시간 묘소를 관리해 온 청주미협과 기념사업회 등 관계자들이 묘비석을 원천 복구하기 위한 다각도의 시도와 방안을 모색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중 선생의 서거 87주년 기일을 맞아 지난 4일 고 작가가 사비를 털어 지경수 조각가와 함께 묘비 복구에 나선 것이다.

고 작가는 “묘비 파손 소식 이후 늘 가슴 한 구석에 육중한 돌덩어리가 얹혀 있는 듯했다. 이제 그 멍에를 벗어버린 것 같아 후련하고, 찌든 때로 답답하셨을 선생께서도 고맙다는 듯 환하게 조각 속에서 웃고 계신 것 같아 뿌듯하다”며 “다시는 이런 훼손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청주시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묘소도, 기념관도 세워져 선생에 대한 선양이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1947년생으로, 14년간의 교수직을 거두고 전업작가로 들어서 ‘여인’, ‘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2021년 세계적인 조각품 40여점을 고향 인천에 기증해 인천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김복진 추모제는 오는 17일 팔봉리 김복진 묘소 일원에서 치러진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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