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골마을서 조합원 모집 나선 김소민 대표
김소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가 지난 28일 강원 원주시 태장동 회사 앞에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아프고 병들면 도시로 옮겨…생활·돌봄 확대 땐 인구 유출 속도 늦춰
지역 주민 70여명 가입…정부 정책도 ‘관광·도시민 유치’서 달라져야”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혼자 살던 A씨는 수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도움을 청할 가족도 없고, 텃밭을 두고도 힘이 없어 가꾸지 못했다. 암 환자 맞춤 식단으로 먹기 힘들었다. 다른 마을 사는 고령의 B씨는 욕창 치료를 하러 매번 택시를 타고 도시 병원에 갔다. 갈 때면 택시비만 6만~7만원을 썼다. 중증 장애인 C씨와 치매 환자인 어머니 D씨는 농촌 임대주택에서 생활한다. 둘은 하루 한 끼 해결도 힘들다.
김소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임업분과위원)가 전한 농촌 공공 의료와 돌봄 공백을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지난 28일 강원 원주시 태장동 회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제가 알고, 직접 확인한 사례들인데, 특수한 게 아니다. 세 사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전국 농촌 마을에 넘쳐난다”고 했다.
공공 돌봄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지역 공동체와 개개인이 메운다. 농가 식당 주인이 A씨에게 맞춤 식단으로 만든 도시락을 제공했다. 주민들이 요일을 나눠 돌봄도 분담했다. 한 지역민이 B씨에게 가정간호사의 방문 치료를 연결했다. 장애인 활동보조사, 성당 자원봉사자, 가정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C씨와 D씨를 도왔다.
정부는 지난 3월27일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김 대표는 “시행에도 예산과 인력의 한계 때문에 당장 생사를 다투는 분들이나 극도로 가난한 분들 지원하기도 빠듯하다. 이런 분들도 넘쳐나다보니 A씨나 B씨 같은 분들은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역 공동체와 현장을 공공 의료, 돌봄과 연결하려 한다. 올해 설립을 목표로 농산어촌 특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조합)을 뜻 맞는 이들과 만들어가고 있다. 농산어촌 의료와 돌봄 공백을 절감한 건 귀농, 귀촌한 정착민들, 기존 거주민의 노화와 질병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20년 원주에서 휴양 및 지역관광 콘텐츠 개발, 농산어촌 자원 활용 프로젝트를 위한 스타트업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를 설립했다. “5년 전만 해도 정정하신 분들이 나날이 기력이 빠지시거나 삶의 질이 떨어진 상태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걸 보고는 2024년부터 조합 설립을 고민했죠. 지금 병들고 지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한때 열정적인 농촌 기업가였어요.”
김 대표는 치유 장소의 역설도 이야기한다. “건강하게 살려고 횡성 같은 데로 귀촌하는 분들이 많다. 조금만이라도 아프면 다시 도시로 나가야 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좀 덜 아프고, 덜 심각할 때 돌봄 제공을 하게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농촌 마을, 지자체, 정부기관을 연결하는 사회서비스 제공의 모델을 조합으로 실현하려 한다. “복지, 보건 재정 연계를 통한 산촌형 사회서비스를 도입하면 거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전체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업”이라고 했다. 인구 감소 대안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는 “인구 유출의 주된 이유는 아프고 병들면 도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과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면, 유출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도시민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촌체험마을이나 휴양마을 시설, 산림치유 시설을 지역민 우선의 소규모 돌봄·회복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거점이 각 지역 자원봉사자, 가정간호사, 산림치유사 등 민간 영역 사람들을 연결해 노화와 질병에 시달리는 지역민에게 생활·건강·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마을 시설은 도시민 일정에 맞춰 주말에만 운영하는데, 주중엔 거주민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정부 정책 중심이 여전히 관광과 도시민 유치다. “이래서는 산촌 고립을 막지 못한다. 거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정주기반도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지원을 받는 시설들은 ‘실적’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정책 입안자들은 시설을 현장에서 운영하는 이들이나 농촌 마을 리더들의 노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전년 대비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방문객이 늘었는지에 관심이 많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도시민 관광·휴양 중심의 농촌체험마을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제안한다. “마을이 도시민에게 단순한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에서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자아성찰과 내면의 치유를 얻는 공간이 되도록 전환하고, 거주민도 삶의 기본 서비스를 받도록 기능해야 농촌을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농촌체험마을이 ‘노인유치원’이라고도 불리는 도시의 노인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김 대표는 관점과 운영 전환이 시설 관리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본다. “주말 손님 반짝 맞고 평일 늘어지는 게 더 피곤하죠. 관리자분들은 주중에도 예측 가능한, 소량의 일 흐름이 이어지는 게 낫다고들 해요.” 그는 “조합을 통한 사회서비스 제공 모델은 청년들에게도 일자리와 농촌 거주의 이유와 가치를 줄 것”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는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70여명이 가입했다고 한다. 방문 진료를 담당할 의사 구하기가 관건이다. 그는 “은퇴한 의사분들 위주로 알아보는데, 쉽지 않다. 의사 급여 지급을 위한 조합 수익 모델도 고민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외국계 반도체 회사와 삼성SDI 중앙연구소 연구전략그룹에서 일했다. 극도의 경쟁과 무더기 해고 등을 겪으면서 탈진한 뒤 퇴사했다. 이어 연고도 없는 원주로 와 정착했다. 코스피 폭등 뒤 삼성SDI 주식 보유 여부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퇴사 때 다 팔고 나왔다. 이후 주식을 안 한다. 지금도 주식이라는 숫자 놀이는 저랑 안 맞다”고 했다.
귀촌 후회는 없다고 한다. 강원도 곳곳에서 경험한 숲과 땅, 사람들 덕이다. 그는 주식보다 땅이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땅에 정착해서 문제를 찾고,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좋아요. 땅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선배님들과 내 또래 정착자들을 발굴하는 과정도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