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이 지난해 9월 9일 공포 이후 6개월이 지난 10일부터시행됐다.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산업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속조치를 단행했으나 경영계는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로 혼란에 빠졌고 노동계는 원청교섭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분주해졌다. 본 연재에서는 노란봉투법 이후 달라진 산업현장의 풍경과 앞으로 과제를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투명한 성과급 제도로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삼성그룹노조연대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노란봉투법 시행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 경영계의 우려와 달리 노사가 원만하게 합의할 수 있다면 법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움직임을 본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3위 현대차그룹은 올해 대대적인 파업 악재를 맞을 수 있다. 이들의 파업 결과에 따라 노동계의 쟁의활동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는 앞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우려한 '잦고 과격한 쟁의행위'와 통한다.
◇ 삼성전자, 2년만에 돌아온 '파업리스크'···이번에는 그룹 전반으로? =
삼성전자는 최근 임금협상이 결렬되면서 파업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9일부터 18일까지 쟁의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투표에서 조합원 과반이 찬성할 경우 노조는 4월 23일에 평택사업장에서 첫 집회를 열고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실시한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최승호 위원장은 5일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날짜를 정해 확실하게 파업해야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고 단결력도 올라간다"며 "최소 3만명 이상 파업에 참여해야 싸움이 된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4년에도 임금협상이 결렬되면서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파업 참가자는 약 6500명 규모였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에 파업을 실시할 경우 이전보다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파업을 주도하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가 창사 이래 첫 과반노조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는 2년전 파업을 주도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의 2배 이상이 참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초기업노조 측도 파업 참가 기대인원을 2년전 6500명의 5배 규모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3만명이 파업에 참여할 경우 삼성전자는 생산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삼성전자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노조와 협상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임금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성과급 제도 개선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전반의 요청사항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삼성그룹 내 13개 계열사 노조로 구성된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는 "합리적인 보상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이자 삼성이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성과급 제도가 투명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뀔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노조연대에는 삼성전자,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웰스토리, 에스원,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의 13개 노조가 포함돼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의 경우 모기업인 삼성전자와 협상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들을 포함한 삼성그룹 내 모든 계열사의 경우 성과급 제도를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과급을 제외한 임금단체협상은 각 회사 노사가 개별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이 요구하는 성과급 제도 개선은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그 상한선을 폐지하라는 내용이다. 삼성전자가 이를 수용할 경우 이는 삼성그룹 내 전 계열사에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한 관계자는 "성과급은 그룹에서 정해 전 계열사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지주사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만큼 성과급 제도를 결정하는 주체는 '삼성전자'"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CES 2026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사진=현대차그룹)
◇ 현대차, 경영상 결정에 반발하는 노조···전방위 파업 조짐 =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세워 생산 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2021년 미국 로봇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으며 올해 초 CES에서 생산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다만 이 같은 혁신을 산업현장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벽을 넘어야 한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CES 직후 로봇 도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해외 물량 이전과 신기술 도입(로봇 자동화)은 노사 합의 없는 일방통행"이라고 반대했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자율주행로봇과 협동로봇 등을 도입해 생산 공정을 자동화했다. 이어 2028년부터 HMGMA에 아틀라스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은 해외 사업장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국내 도입도 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새만금에 약 9조원을 투입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태양광 발전, AI 수소 시티 등을 구현할 방침이다.
현대차가 새만금에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을 구축할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아틀라스나 제조용 로봇 생산시설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만금 프로젝트는 2027년 착공해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만약 새만금에서 아틀라스를 생산한다면 2030년 이후에는 국내 제조현장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 요건에 대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금, 근로조건뿐 아니라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조정, 이전, 외주화 등에 대해서도 파업을 할 수 있다. 로봇의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일자리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면 파업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인데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3대 AI 강국 진입'인 만큼 무작정 파업을 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초 휴머노이드 로봇을 반대하는 노조 움직임에 대해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AI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형 아틀라스 (사진=보스턴다이나믹스)
한편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여러 분야에서 노사 갈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는 '노사 간의 대화와 협의'를 강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갈등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노사 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영훈 장관은 노란봉투법 시행 전인 9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경영계는 교섭을 회피하기보다는 대화와 책임있는 자세로 상생의 해법을 찾는 노력을, 노동계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절제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에 임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노사 모두가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의에 나선다면 산업 현장의 갈등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원청까지 '사용자'로···하도급 80% 건설업계, 노조 리스크 정면 노출
[노란봉투법 시행 ①] 하청의 원청 교섭 움직임 확산··산업 현장서 감지된 '변화'
여용준 기자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