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트럼프 2.0 읽기
2025년 12월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뒤 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에 나서도록 만들 수 있었을까. 네타냐후 총리의 트럼프 설득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미국 우파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기업들을 통해 2024년 미국 대선 이전부터 ‘트럼프 재집권’ 작업에 관여하면서 치밀하게 작업한 결과다. 핵심은 미국 내 우파 유대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안보팀 곳곳에 ‘신네오콘’ 세력을 포진시키는 작전이었다. 이들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트럼프 재집권 정책 설계도로 작성한 ‘프로젝트 2025’ 집필진에 진입했다.
지난해 1월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과 동시에 워싱턴의 반덴버그연합(Vandenberg Coalition)이라는 싱크탱크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의 새 외교정책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기의 거래: 중동 해결’이라는 제목이다. 이 문서는 트럼프의 두번째 임기를 겨냥한 ‘네오콘 선언문’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더 많은 무기를 제공하고 이란에 대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운동에서 ‘미국이 해외에 군사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고안된 강경한 로드맵이다. 보고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고, 중동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해온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중국을 워싱턴의 “핵심 적대국”으로 규정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2기 외교의 우선 해결 과제가 이란과 중국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반덴버그연합의 보고서는 지난 1년 동안 워싱턴의 권력 중심부에서 반복해 검토됐다. 특히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왈츠 주유엔대사, 앨릭스 웡 전 국가안보 수석 부보좌관,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차관 등이 이를 실행할 구체 전략을 만들어 대통령에게까지 전달하곤 했다. 보고서의 전략적 초점은 결국 중국 견제에 있다. 우선 베네수엘라 정권을 미국 영향권 안에 두면, 베네수엘라를 거점으로 키워온 중국의 서반구 내 영향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은 외교·군사 자원을 다른 지역에 집중해, 중동 등 핵심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보다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단계적으로 약화시킨다는 구상이다. 트럼프의 이란 전쟁은 베이징 방문을 앞둔 사전 정지 작업이란 분석도 있다. 힘을 중심에 놓는 트럼프식 외교를 ‘파괴한 뒤 거래’(Destroy and deal)라는 틀로 체계화해 과거보다 더 공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모델로 제시한 것이다.
2021년 설립된 반덴버그연합은 개입주의적 외교 정책과 국방비 증액을 옹호한다. 지난 한해 동안 이 단체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관한 보고서를 쏟아내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체포와 이란 공격을 주장해왔다. 저명한 네오콘 실력자 엘리엇 에이브럼스가 반덴버그연합의 설립자이자 의장이다. 에이브럼스는 중동 내 친미 정권 수립이 테러를 근절하는 근본 대책이라고 믿는 강경한 개입주의자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도 있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에이브럼스는 외교관계위원회(CFR) 이사로 활동하면서 오바마의 외교 독트린인 ‘뒤에서 이끄는 정책’(Leading from Behind Policy)이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가 쿠바·이란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을 “적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라크 전쟁의 부작용이 명백해졌는데도 그는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계속 의견을 내면서 흩어진 네오콘 전략가들을 재조직했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에이브럼스는 베네수엘라·이란 담당 특사로 임명돼 다시 공직에 복귀했다. 그와 거의 동급의 네오콘 전략가 존 볼턴도 이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에이브럼스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매우 각별한 관계다. 필자는 2007년 에이펙 연례총회장에서 에이브럼스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에이브럼스는 필자가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중국·이란·북한이 하나로 묶여 있으니 미국·이스라엘·한국이 안보전략상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4년 대선 때 트럼프가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고립주의를 주장하자 에이브럼스는 반덴버그연합에 네오콘계 전략가들을 모았고, 이들을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기획팀에 합류시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공식 직함을 맡지는 않았지만, 에이브럼스는 중동 정책의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는 막후 조력자이자 분석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를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 곳곳에 포진한 신네오콘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밀러 부비서실장, 왈츠 대사, 루비오 장관, 그리고 상원에서 트럼프를 가장 든든하게 지지하는 테드 크루즈(텍사스주),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주), 톰 코튼(아칸소주) 상원의원이 에이브럼스의 전략에 동조하는 신네오콘들이다. 이외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 브라이언 캐버노 국토안보부 차관 지명자, 얼 매슈스 국방부 법률 고문, 모건 오테이거스 중동 평화특사, 마이크 허커비 이스라엘 대사가 있다. 허커비의 수석 고문인 데이비드 밀스타인은 마가(MAGA) 운동의 중심 역할로 백악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이스라엘 지지자인데, 트럼프의 굳건한 신뢰를 받는 폭스뉴스 진행자이자 보수 논객인 마크 레빈의 의붓아들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콜비 차관은 에이브럼스 처제의 아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왼쪽)와 에릭 트럼프가 지난 2월24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미 국회의사당 하원 회의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 회의 국정 연설을 듣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외교정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네오콘들은 이라크전 실패와 함께 존 볼턴을 끝으로 워싱턴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중심 중동정책’이란 오래된 전략을 들고 어느새 트럼프 권력의 중심부로 깊이 들어와 있다. 이들 신네오콘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자신들의 강경한 개입주의와 결합해 새로운 매파 정책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옛 네오콘들이 외쳤던 ‘민주주의 확산’은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압도적 힘을 통한 굴복과 거래’에 집중하면서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가치보다는 실리’를 내세우며 적대국(결국 중국)의 실질적인 무력화를 목표로 정해 트럼프의 관심을 끌어냈다.
이들 신네오콘과 손잡은 네타냐후의 또 다른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에 유대계 자본들을 대거 합류시킨 것이다. 주로 방위산업, 인공지능, 우주항공, 바이오 분야의 거대 기업들이다.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하고 전쟁을 벌이는 동안 그의 두 아들은 군수산업에 투자해 커다란 이득을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에릭 트럼프는 미 국방부 계약업체인 이스라엘 드론 기업 엑스텐드(Xtend)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번 전쟁으로 드론 전력이 중요해지면서 큰돈을 벌었다.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드론 부품 스타트업인 언유주얼 머신스(Unusual Machines)의 지분을 보유한 이사다. 이 회사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드론 부품 생산을 위한 6억2천만달러 규모의 대출을 확보했는데, 국방부 전략자본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애국적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국방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회사 ‘1789캐피털’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1789캐피털’은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들 가운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억만장자들의 네트워크인 ‘록브리지네트워크’의 거부들이 투자한 투자운용사이다. 트럼프 재선 직후, 트럼프 주니어가 합류하면서 1789캐피털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 투자 분야는 국방, 무기 산업으로, 안두릴, 하드리안, 스페이스엑스 그리고 국방부 계약업체로 희토류 자석을 생산하는 벌컨 엘리먼츠 같은 기업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 올라 있다. 특히 트럼프 주니어는 논란이 많은 시장 예측 업체인 폴리마켓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주요 외교·안보 정책을 미리 파악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워싱턴은 이렇게 원거리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거대한 로비스트 네트워크와 미국 패권을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는 신네오콘들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지형 위에서 네타냐후의 영향력도 작동한다. 이들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묶어 크링크(CRINK)로 부르며 새로운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는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꽉 막힌 북-미 관계에 틈새가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지만, 필자는 불안감이 앞선다. 화염에 휩싸인 페르시아만 일대가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하면 지나친 우려일까.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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