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공허한 AI 글이 난무하지만언젠가 AI와 함께 글을 쓰는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수도요즘은 읽는 일이 괴롭다. 눈이 가는 곳 어디에나 AI가 생성한 문장들이 보인다. 나이든 학자의 SNS에도, 신문 기사나 정부의 보도자료에도, 신간을 알리는 출판사의 소개글에도 AI의 ‘문체’가 역력하다.얼마 전에는 어느 책의 소개글에서 ‘이 책의 문장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붙잡아 두기보다, 오히려 세계 속으로 흩어지며 독자를 그 장면 안으로 끌어들입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어지러움에 잠시 눈을 감았다 열어본 어느 뮤지션의 인터뷰에는 ‘이는 기술로 증명되는 천재성이 아니라, 감각과 통찰로 축적된 천재성에 가깝다’는 문장이 있었다. 도망갈 곳은 정말로 없는 걸까, 나는 중얼거리며 그 미끌미끌한 글자들을 읽었다.지금까지 글을 읽고 쓰고 다듬는 일로 밥벌이를 해 왔는데도 나는 이 문장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문장으로 세계를 붙잡는 일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음악에서 기술과 감각, 통찰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글을 쓰는 이라면 이런 질문을 회피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대답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찜찜하다. 어쩌면 그런 질문들에 맞서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의 골격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AI가 생성해 주었을 이 단어들은 짐짓 서로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대한 언어 말뭉치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글에 담긴 사유는 파열음을 내며 전진한다기보다 그저 옆으로 반 발짝씩 이동하며 서로 엉겨붙어 흐물거린다. 그런데도 그 외피는 지나치게 매끄럽고 문장은 술술 이어진다. 그러므로 공허하다.딱히 슬퍼할 생각은 없다. 폐허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며 거짓 울음소리를 내는 노인은 되고 싶지 않다. AI가 모든 것을 다 무너뜨렸으며, 원래 순수하고 진정성 넘치던 인간의 글쓰기가 타락했다는 성급한 결론에 투항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급격한 기술적 변곡점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푸념과 슬픔이 있어 왔다는 것을 나는 사진의 역사에서 배웠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사진은 화려하고 거대한 AI 이미지에 비하면 그저 무해하고 그리운 노스탤지어의 파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진을 처음 접한 19세기 화가들은 경악하고 불안해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손으로 그린 그림에 익숙한 이들에게 세계를 그저 기계적으로 베어낸 사진은 한없이 공허했으며, 심지어 일종의 종말론적 두려움을 주었다. 매체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세기 말 타이프라이터의 발명으로 인해 글쓰기의 성격이 얼마나 급격히 변화했는지에 대해 썼다. 유려한 손글씨로 상징되는 비장애인 남성의 글쓰기가 지닌 개성과 필체는 누구나 자판을 눌러 배열할 수 있는 기호의 연쇄가 되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쓰는 기계(타자기)가 인간에게서 손의 본질적 지위를 빼앗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인쇄된 책을 처음 본 전통 서예가들은 글쓴이의 수양이나 성정, 기운을 읽을 수 없는 활자를 조금은 공허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AI가 글쓰기에서 무너뜨린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신체에 불편함이 있거나 지식과 시간이 부족했던 이들이 AI를 활용해 쓴 글을 SNS에 올리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AI를 사용해 글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자서전을 쓰는 일을 돕는 활동가들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전의 글쓰기에 있었다고 상상되는 미덕을 아쉬워하며 쉽사리 절망할 기회를 찾는 대신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지, 비인간 행위자인 AI와 함께 읽고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다시 AI가 생성한 문장들을 읽는다. 신체가 없는 이들, 세계가 아니라 말뭉치로부터 언어를 배운 이들은 이렇게 쓰는구나. 지금은 비릿하고 공허하게 느껴지지만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글을 AI와 함께 쓰는 이들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다.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타자기를 얻어 더욱 위험한 글을 썼던 니체처럼.김현호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너섬情談] 기계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
공허한 AI 글이 난무하지만 언젠가 AI와 함께 글을 쓰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수도 요즘은 읽는 일이 괴롭다. 눈이 가는 곳 어디에나 AI가 생성한 문장들이 보인다. 나이든 학자의 SNS에도, 신문 기사나 정부의 보도자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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