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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내년 은행 단축 영업에 고객 비판 봇물…“연차내고 가라는 거냐”

금융 노사가 내년 4월부터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늦추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고객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후 4시 폐점 시간은 그대로여서 하루 대면 영업시간은 7시간에서 6시간 30분으로 줄어든다.

16일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의 모습. 연합뉴스

금융 노사가 내년 4월부터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늦추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고객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후 4시 폐점 시간은 그대로여서 하루 대면 영업시간은 7시간에서 6시간 30분으로 줄어든다. 금융노조는 직원들이 오전 9시 개점을 위해 일찍 출근해 온 현실을 반영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출근 전 은행을 이용하던 직장인과 대면 거래가 필요한 고객의 이용 기회가 줄어든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28일 영업시간 단축 등을 담은 산별 중앙교섭에 잠정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총액임금 3% 인상과 주 1시간 이내 자율 출근제, 금요일 고객 업무를 일정 시점에 마감하는 ‘라스트콜’ 제도도 포함됐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영업시간 단축 등을 두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생활 균형을 위한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노조가 개점 시간 조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은행 직원의 근무가 고객에게 보이는 영업시간보다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창구에서 고객을 맞으려면 직원들은 그 전에 출근해 전산과 현금 취급을 준비하고 당일 처리할 업무를 확인해야 한다. 오후 4시에 문을 닫은 뒤에도 거래 내역 확인과 정산, 끝나지 않은 업무가 이어질 수 있다.

금융노조가 2024년 공개한 자체 조사에서는 한 지부의 영업점 근무자 응답자 6459명 중 5492명(약 85%)이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당시 노조 측은 오전 9시 개점을 위해 직원들이 30분에서 1시간가량 일찍 출근한다며 육아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문제는 직원의 조기 출근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고객의 대면 이용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점이다. 오전 9시 개점 직후 은행에 들렀다가 출근하던 고객은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을 잃는다. 낮에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직장인이라면 은행 업무를 위해 휴가를 내야 하느냐는 불만도 제기될 수 있다. 직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더라도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부터 줄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6일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의 모습. 연합뉴스

모바일뱅킹이 보편화했지만 모든 고객이 모든 업무를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면 상담이나 서류 확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영업점 방문에 의존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지난해 말 영업점은 2688곳으로 1년 전보다 91곳 줄었다. 지점이 줄어드는 가운데 영업시간까지 짧아지면 직접 방문해야 하는 고객의 불편이 더 커질 수 있다.

개점 시간을 늦추는 것이 직원의 실제 근무시간 단축으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다. 개점 전 준비 업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하거나 일부 직원이 계속 일찍 출근한다면 현장의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조기 출근 시간이 은행별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개점 준비에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영업시간은 과거에도 조정을 거쳤다. 2008년 금융 노사는 당시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30분이던 영업시간을 오전 9시~오후 4시로 30분씩 앞당기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7월에는 오전 9시 30분~오후 3시 30분으로 단축 운영했고, 2023년 1월 오전 9시~오후 4시 체제로 돌아왔다. 이번 합의는 폐점 시간을 유지한 채 개점만 늦춰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총시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해외 은행의 영업시간은 지점마다 다르다. 영국 HSBC의 리버풀 한 지점은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영업하고 토요일에도 창구를 연다. 미국 체이스의 한 지점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오후 5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2시에 영업한다. 싱가포르 DBS도 지점에 따라 오전 8시 30분 또는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 개점 시각만 비교하기보다 오후와 주말을 포함해 고객에게 얼마나 다양한 이용시간을 제공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노사는 이번 합의에 디지털 금융 확산과 고객 이용행태 변화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전 9시부터 9시 30분 사이에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겪을 불편을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알려지지 않았다. 출근 전 은행 이용이 어려워지는 직장인, 근무시간 중 자리를 비우기 힘든 고객, 방문 가능한 지점이 줄어든 고객의 사정을 고려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의도 직장인 김모(32)씨는 “안 그래도 은행 영업시간이 짧아 평일에 방문하기 애매했는데 이젠 아예 연차를 내고 가야할 판”이라며 “아무리 사정이 있더라도 고객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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