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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꿈을 먹고 자란 아이들, CEO가 되어 돌아오다

20년 전쯤의 일이다. 부푼 꿈을 안고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영업의 벽은 높았고 거래처 확보는 더디기만 했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회계 자격증 학원의 강사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꿈을 먹고 자란 아이들, CEO가 되어 돌아오다

강신욱 인택스세무법인 울산남지점 세무사·울산대 겸임교수·울산신문 독자권익위원

20년 전쯤의 일이다. 부푼 꿈을 안고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영업의 벽은 높았고 거래처 확보는 더디기만 했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회계 자격증 학원의 강사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냈고, 다행히 한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됐다. 내가 맡은 반은 노동부 교육훈련 과정으로 운영되는 성인 자격증반이었다.

낮에는 조용한 사무실을 지키다 저녁이 되면 학원으로 출근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되레 활기를 띠었다. 그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소기업에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해 더 나은 곳으로의 이직을 꿈꾸는, 저마다의 간절함을 품은 이들이었다. 그들의 열정은 개업 초기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강의를 시작한 지 이주쯤 지났을 무렵, 학원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셨다. 고등부 강사가 갑자기 퇴사하게 됐다며 고등학생 반도 함께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학원은 내가 맡은 노동부 과정까지만 마치고 폐업할 예정인 곳이었다. 사정을 안 기존 강사들은 이미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고, 강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내 이력서가 도착했던 것이다.

폐업을 앞둔 학원이라 고등부 반은 단 하나, 학생도 고작 6명이 전부였다. 실업계 고등학생 4명과 인문계 고등학생 2명,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어차피 내 사무실 일도 한가하던 터라, 조금 일찍 퇴근해 고등부 수업을 하고 이어서 성인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걱정과 달리 고등부 아이들은 나를 참 잘 따라주었다. 20명 정원의 성인반 학생들 역시 눈빛을 반짝이며 무서운 기세로 몰입했다. 욕심이 생겼다. 원래 목표인 '전산회계 1급'에 더해 '기업회계 자격증'도 함께 준비해 보자고 제안했다. 한 번의 수강 기간에 두 개의 자격증을 도전하는 강행군이었지만, 학생들은 힘든 기색 없이 오히려 신나 하며 도전해 주었다. 보통 전산회계 자격증의 평균 합격률은 30% 내외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반의 합격률은 무려 80%를 기록했다. 기적 같은 결과에 학원 원장님은 입이 귀에 걸리실 만큼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노동부에 교육훈련 지정학원 취소 신청을 미리 해버린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합격의 기쁨을 맛본 성인반 학생 16명은 내친김에 상위 단계인 '전산세무' 과정까지 도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원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 나는 이 학생들을 이대로 흩어지게 둘 수 없었다. 이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노동부 교육이 가능한 인근 학원들을 찾아 나섰다. "전산세무를 희망하는 학생 16명이 준비되어 있으니 반을 개설해 줄 수 있는지" 물으니, 다른 학원들이 서로 반을 열어주겠다며 환영했다.

덕분에 성인반 학생들은 다 함께 새로운 둥지에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고등부 아이들이었다. 겨우 6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다른 학원을 찾아가 내가 직접 수업을 개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한테 계속 배우고 싶어요"라며 내 손을 붙잡았다. 고민 끝에 나는 무모하지만 따뜻한 결정을 내렸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아이들을 우리 집 거실로 불러 모은 것이다. 학원에 내던 수강료 그대로, 우리 집 거실에서 과외식 수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었을까. 거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더 깊은 정이 생겼다. 아이들 역시 나를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본인들의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수업 중간중간 쏟아내는 아이들의 조잘거림으로 거실은 늘 활기가 넘쳤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 공부한 덕분인지 아이들은 전원 자격증 취득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눈을 빛내며 자격증을 손에 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이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 더 좋은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러다 문득 내 대학 시절의 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방학 때 출전했던 '전국 세무회계 경연대회'였다. 고등부와 대학부로 나뉘어 전국의 인재들이 실력을 겨루던 그 대회의 뜨거운 열기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 전국 대회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자격증 취득을 넘어, 아이들에게 "나도 전국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고등부 참가를 위해서는 '학교장 추천서'가 필수였는데 대회가 열리는 충북 제천까지는 너무 먼 거리였고, 학교 측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 추천서 발급을 주저했다. 아이들이 낙담해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내가 직접 담임선생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진심 어린 설득 끝에 학교는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었고, 우리들의 무모하고도 특별한 전국 대회 도전기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대회 당일, 전국의 쟁쟁한 인재들 사이에서 긴장감 가득한 시험을 치른 결과, 놀랍게도 개인전에서 2명의 아이가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아쉽게 수상을 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전국 대회에 함께 참여해 보았다는 성취감만으로도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의 눈빛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 후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나 역시 밀려드는 세무 대리 업무와 바쁜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12~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문이 열리며 어엿하고 당당한 모습의 여성 두 명이 들어섰다. 20년 전 내 집 거실에서 선생님이라고 조잘거리던 바로 그 아이들이었다. 몰라보게 성장한 제자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들의 사업자등록증을 내밀며 세무 기장을 의뢰하러 방문했다고 말했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얼마나 바르고 대견하게 잘 자라주었는지 기특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그 친구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고, 청춘의 가치 있는 눈물과 다양한 경험을 쌓아 마침내 30대에 당당한 CEO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깊은 감동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개업 초기, 내 앞가림조차 숨 가빴던 시절에 무모하게 열었던 거실 교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멘토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이자 언니로서 아이들에게 작은 꿈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아이들은 그 꿈을 먹으며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개척해 나갔다. 이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비로소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앞길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관계없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그들의 가능성을 온전히 믿어주는 멘토가 되어주는 것. 꿈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또 다른 멋진 어른이 되어 사회를 지탱하는 이 아름다운 순환을 보며, 오늘도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어른의 책무를 다짐해 본다.

그 시절, 거실에 모여 앉아 공부하느라 출출해하던 아이들을 위해 부쳐내던 단골 간식이 있었다. 지글지글 전 익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꿈도 함께 익어가던 그 방안의 온기가 지금도 선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선생님, 최고예요!" 하며 웃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따뜻했던 시절의 추억을 한 접시 나누고 싶어, 우리 거실 교실의 단골 메뉴였던 '해물부추전'의 기억을 여기에 보탠다.  강신욱 인택스세무법인 울산남지점 세무사·울산대 겸임교수·울산신문 독자권익위원

추억의 거실 간식-겉바속촉 해물부추전 레시피

△재료(2장 기준): 부추 두 줌(150g), 청양고추 2개, 냉동 모듬해물 1컵, 부침가루 1컵, 튀김가루 1컵, 찬물(또는 얼음물) 1컵 반, 국간장 0.5큰술, 식용유

△준비: 부추는 4~5cm 길이로 썰고 고추는 송송 썬다. 해물은 찬물에 해동한 뒤 키친타월로 물기를 꼭 짜준다.

△반죽: 부침가루 1컵, 튀김가루 1컵, 찬물 1컵 반, 국간장 0.5큰술을 볼에 넣고 날가루가 겨우 안 보일 정도로만 대충 섞어준다. (너무 많이 저으면 바삭함이 사라진다.)

△버무리기: 완성된 반죽에 부추, 해물, 고추를 넣고 반죽 옷이 아주 얇게 묻을 정도로만 살살 버무린다.

△부치기: 팬에 식용유를 자작할 정도로 넉넉히 두르고 달군 뒤, 중강 불에서 반죽을 얇게 펴서 튀기듯 노릇하게 앞뒤로 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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