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지 세력의 결집을 호소하고 나섰다. 지난달 24일 해외 순방 중에 혼자로는 역부족이니 “대통령 친구님들의 참여와 실천이 꼭 필요하다”는 긴 호소문을 자신의 엑스(X)에 올렸다. 기득권의 저항과 지지 세력의 분산으로 개혁 세상을 향한 자신의 리더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 탓이라고 했던 1주일 전의 기조와 다르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권의 내분과 거칠어진 비판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국정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해 있지만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현직 대통령이다. 그런데 스스로 저항의 중심에 서 있는 민주화 운동가처럼,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소환한다. 집권 대통령이 인용할 말은 아니다. 2009년 6월 당시 입법 권력까지 장악했던 이명박 정권의 패권에 맞서 민주주의 회복에 나서라고 독려했던 은퇴한 대통령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권력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현직 대통령이다.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가도 아니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도 아니다. 권력의 책임 역할과 상황 인식의 혼돈이다.
◇ 저항의 언어와 현직 대통령의 역할 혼돈
언론으로부터의 소외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명칭만 바꾸는 조직 개편을 통해서 방통위원장을 교체할 정도로 패권적 언론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던가. 다만 ‘이재명의 민주당’임을 거리낌없이 강조했던 단일대오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 대통령을 뒷받침했던 주류 유튜브 언론에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권 내부의 권력 투쟁이다. 이 대통령은 마치 2017년 민주당 내 비주류로 19대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심정과 전략을 되뇌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비주류로서 인터넷 지지 동원 조직 ‘손가혁(손가락 혁명군)’이 함께 했듯이, ‘대통령 친구님들의 참여와 실천’을 호소한다.
제도적 권력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대통령이다. 자신의 리더십과 국민 신뢰가 실질적 통치 권력의 남은 관건일 뿐이다. 국정지지도 추락이 만든 위기 상황에서 과제는 리더십에 대한 성찰과 국민 신뢰의 회복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보편적 국민 신뢰 회복 전략보다 여권 내부의 주도권과 대통령의 친구들 결집에 주력한다. 지난달 18일의 대국민 기자회견에서도 친DJ-친노-친문을 이어받은 이재명임을 강조했다. 그래도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나의 부족함을 말했지만, 이번에는 기득권의 저항과 언론 환경이 문제인 것처럼, 지지 세력의 결집과 적극적인 행동을 호소했다.
국민적인 신뢰 회복이라는 명제 앞에서 정파적 구심력 강화에 주력하는 혼란은 이 대통령의 독특한 권력 기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권력 기반은 사법 리스크의 위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형성된 유사 종교적 카르텔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권 내부의 분열은 단순한 세력적 분열이나 약화를 넘어 유사 종교적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인 셈이다. 그런 교조적 기반의 일부는 국민의 보편적 신뢰 기반과 충돌한다.
그동안 여권의 정파적 언론의 중추였던 김어준 유튜버는 최근 이 대통령이 편향된 ‘알고리즘 감옥‘에 갇혀 객관적인 사고와 판단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을 온라인 작전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 년 전부터 정치인을 알고리즘 감옥에 가둬 버리는 온라인 작업이 매우 고도화됐다. 엑스 추천 알고리즘 자체를 조작할 수는 없지만 알고리즘의 입력값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조작론의 근거가 불분명하거나 침소봉대한 것일 수 있다. 부정 선거 음모론을 토대로 그가 제작했던 ‘더플랜’이나 세월호 음모론의 ‘그날 바다’ 모두 근거없는 또 다른 음모적 영화였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현 여권 지지 세력의 상당수가 김어준류의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정보에 교조화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는 국민의 보편적 신뢰보다는 정파적 알고리즘에 의존했던 여권의 취약한 기반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공유 동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지난 9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빛의 혁명’ 교훈과 권력의 절제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빛의 혁명’ 정신과 과제, 한국 민주주의의 퇴락 원인과 그 책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친구들에게 호소했던 앞의 포스팅에서도 “빛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고, 저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 대표 일꾼이 되었다”고 했다. 빛의 혁명이 남긴 교훈은 권력 오남용의 위험성과 이에 대한 경계였다. 그러나 내란 세력 청산 구호 앞에서 권력 오남용의 경계와 권력의 절제라는 핵심 교훈은 사라졌다. 과거를 빌린 구호가 현재와 미래의 위험을 은폐했다.
지난 집권 1년 ‘내란 청산’은 상대 야당을 제압하고 패권을 주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레임이었다. 그러나 이미 진압된 사건을 끊임없이 불러내 상대를 악마화시키는 프레임의 효과는 점차 소진돼 갔다. ‘공소 취소’ 시도 같은 새 집권 세력의 무리한 권력 남용이 위헌 논란을 부르며 오히려 국민 여론의 반발을 샀다. 한때 급등했던 주식 시장의 반작용과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겹치며 대통령 지지도가 급락하게 된 것이다. 여권의 분열이나 검찰 개혁의 미비가 지지도 추락의 요인이 아니었다. 여권의 검찰 개혁론은 오히려 패권적 국정 리더십의 한 유형으로 별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이를 위한 개혁을 역설하면서 ‘행동하는 양심’을 상기시키며 지지 세력의 참여를 주문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책임은 행동하는 양심의 시민 참여 이전에 대통령 스스로에 있다. 그럼에도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과 ‘친구들’의 실천을 주문하는 것 또한 집권 세력의 책임을 저항 세력의 역할로 전도시키고 있다.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권력의 오남용을 경계하고 심판하는 것이 돼야 한다. 위헌적 비상계엄을 저지하고 탄핵으로 끌어내려 그들을 심판하고 있지만, 우리 정치의 민주주의 위기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로 수차례 지적했던 양극화의 정치와 카르텔화된 정당의 문제다. 레비츠키(Steven Levitsky) 등이 민주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몰락 현상에서 주목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미국의 트럼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터키의 에르도안 같은 반민주적 포퓰리스트나 선동 정치가의 집권 배경에 정치의 양극화와 민주적 정당 기능의 실패가 공통적으로 있었다고 레비츠키 등은 분석한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 민주국가의 민주주의 위기 요인
양극화한 정치는 공동체를 위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시킨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한다. 합의된 공존의 원리를 토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민낯의 권력 투쟁이 정치를 지배한다. 기존의 민주제도들이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재편되기도 한다. 국민 주권의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지배한다. 반민주적 포퓰리즘이다.
민주주의를 외쳤던 세력이 집권 이후에 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하는 반민주적 포퓰리스트가 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권력 자체가 독선적으로 지배하려는 반민주적 속성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항 시대의 비타협적 태도가 자칫 통치 권력의 독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공적 대의가 사라진 민낯의 권력 투쟁이 지배하는 양극화의 정치 구조에서 그런 양상은 더 두드러진다.
양극화의 정치는 카르텔화된 정당 정치와 맞물려 있다. 정당이 민주적 기능을 매개하는 중간 조직이 아니라, 정치 참여를 독점하는 배타적 관문인 카르텔이 돼 있다. 독점적 카르텔 구조에서는 국민의 선택 이전에 카르텔의 선택이 정치인으로서 성장 여부를 좌우한다. 카르텔의 조직원 같은 정치인들이 정당 정치 전면에 두드러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당 정치의 저질화를 우리는 보고 있다. 정당의 민주적 기능의 실패를 넘어, 대의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정치권의 카르텔 조직으로의 변질이다.
민주당 계열의 비주류에서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부각될 수 있던 배경에는 권력을 향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던 이른바 ‘사이다 발언’들이었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도 수사를 받아야 하고 강제 구인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도 범법자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공정한 세상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금도 내세우고 있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뒷받침해 주는 발언들이었다. 그런데 진행되던 재판마저 보류한 채, 공소 취소 운운하고 있다.
그동안의 패권적 기세를 끌어왔던 동력마저 소진되면서, 자가당착이 돼버린 사이다 발언의 한계도 나오는 듯하다. 내란 프레임의 효용은 수명을 다했다. 내란 잔불 진압론으로 이어가려 하지만, 자충수가 될 것이다. 한때 대통령의 유능함으로 비추기도 했던 국무회의의 만기친람 훈시 모습은 권력의 과시 효과 이상을 만들지 못했다. 최근 여기저기 불거지고 있는 국정 미숙은 대통령의 만기친람 분위기에 밀려난 국정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인터넷에 항의하고 담벼락에 욕설하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에 항의하는 시민의 몫이다. 현 단계 민주주의를 위한 과제는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성찰과 카르텔 정치의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혼자로는 역부족이라며 우군의 결집을 호소하는 대응 방식은 대의제도의 정점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역할이나 책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기친람의 훈시하는 국무회의 모습과 대조된다. 우리의 대통령은 계몽군주가 아니다. 여권 내부의 분화는 예정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야당의 자멸 빼고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반전의 동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정 지지도와 여권 내분의 숨어 있는 지렛대이자 대통령의 역할 인식 혼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 재정비하느냐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만흠(전 국회입법조사처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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