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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분석] '57조의 그림자'…AI 슈퍼사이클이 한국 경제에 던진 빛과...

PC·스마트폰 등 정해진 디바이스 수요에 따라 등락하던 종전 사이클과 달리, 이번에는 빅테크의 AI...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둔화 가능성, 차세대 HBM 시장의 경쟁 격화도 중장기 리스크로...

[기획·분석] '57조의 그림자'…AI 슈퍼사이클이 한국 경제에 던진 빛과...

메모리 두 회사 영업이익 합산 95조…코스피 41%가 두 종목에 쏠려

가격 폭등은 PC·스마트폰 인상으로 전이…공급자 우위 시장의 명암

AI생성 이미지.

[공감신문] 신선미 기자=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 한국 기업이 한 분기에 거둔 영업이익 사상 최고치다. 삼성전자가 30일 발표한 2026년 1분기 확정 실적은 단순한 어닝 서프라이즈를 넘어 한국 경제의 지형을 다시 그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 영업이익은 무려 756%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42.8%,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1%다. 같은 1분기 SK하이닉스 역시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률 72%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정점에 있는 엔비디아의 직전 분기 수익률을 웃도는 수치다.

두 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만 합치면 94조8000억원.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전체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를 두 기업이 단 석 달 만에 벌어들였다.

■ AI 인프라가 만든 '구조적 슈퍼사이클'

이번 호황의 본질은 단순한 메모리 가격 반등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인프라가 메모리 수요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2일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했다. 동작속도 11.7Gbps로 국제 표준을 46% 웃도는 이 제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된다. SK하이닉스 또한 같은 시기 HBM4 양산을 본격화하면서 두 회사 모두 2026년 HBM 생산물량이 사실상 '완판'된 상태다.

가격 상승 흐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일반 D램 계약가는 직전 분기 대비 93~98% 급등했고, 낸드플래시도 55~60%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분기에 D램이 추가로 80~8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트너는 올해 연간 D램 가격이 47%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과거 메모리 호황과 본질적으로 다른 흐름이다. PC·스마트폰 등 정해진 디바이스 수요에 따라 등락하던 종전 사이클과 달리, 이번에는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일종의 '바닥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AI가 대형 모델 학습 단계를 넘어 실시간 추론을 반복하는 '에이전틱 AI' 단계로 진화하면서 D램·낸드 전반의 수요 기반이 넓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 코스피 시총 41%가 두 회사에…커지는 '반도체 의존도'

문제는 이 호황의 빛이 한국 경제 전체로 균질하게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4월 23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2173조원. 코스피 전체 시총(약 5304조원)의 40.96%에 해당한다. 두 회사 비중이 4월 7일 처음 40%를 돌파한 뒤 4월 21일에는 장중 41%를 넘어서기도 했다. 1분기 코스피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이 약 30% 증가했지만, 두 회사를 제외하면 오히려 3.7% 감소했다는 집계까지 나왔다.

다시 말해, 한국 증시의 외형 성장이 사실상 '메모리 두 종목'에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넘어 6000선까지 가파르게 오른 배경에도, 같은 기간 다른 업종의 부진이 뚜렷해진 이면도 함께 자리한다.

삼성전자는 1분기 자기주식 매입에 7조6000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4월 2일 약 14조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상반기까지 16조원 규모 추가 소각이 예정돼 있다. 주주환원 강도가 그만큼 강해졌지만, 이 흐름이 코스피 전반의 '리레이팅(재평가)'으로 연결될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빛의 반대편…메모리 인플레이션이 부른 '소비자 청구서'

호황의 그늘은 산업 사슬의 다른 쪽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삼성전자 자체 실적 안에서도 양극화는 뚜렷하다. 반도체 부문(DS) 영업이익률이 66%에 달한 반면, 모바일·가전을 포함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영업이익률은 6%에 그쳤다. 갤럭시 S26 시리즈가 글로벌 1분기 점유율 22%로 시장 1위를 탈환하고도 모바일경험(MX)·네트워크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조5000억원 줄어든 건 메모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 가격이 동반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산업 경계를 넘어 일반 소비자에게도 청구서로 도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6년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칩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8% 줄었으며, 회복 시점은 2028년 초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가트너는 2026년 연간 PC 출하량이 11.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노트북·데스크톱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학생용 PC 구입 부담이 급증해 디지털 교육 격차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 입장에서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단말기 원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데, 이 가격이 단기간에 두 자릿수 이상 오르면서 보급형 라인업 유지 자체가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메모리 호황의 낙수효과가 완제품 부문에서는 오히려 원가 압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 잠복한 변수들…파업·지정학·사이클 변동

순항 일변도로 보기도 어렵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5월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다. 증권가에서는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메모리 공급의 2~4%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인 차질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이미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상황에서 이는 가격을 한층 자극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 결렬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 미국의 고율 관세, 환율 변동성이 수익성에 영향을 줄 변수로 거론된다. 사상 최대 실적 발표 직후에도 삼성전자 주가가 일주일간 4.1% 오르는 데 그친 것은 이 같은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둔화 가능성, 차세대 HBM 시장의 경쟁 격화도 중장기 리스크로 꼽힌다.

■ '뜨거운 분기' 이후 던져진 과제

산업 정책 차원의 과제도 분명해지고 있다. 메모리 두 회사의 호황을 한국 경제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환산하려면, 반도체 인프라(전력·용수·인력) 확충, 후방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강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자립도 제고가 동시에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노사 관계 안정과 주주환원·재투자 사이의 균형, 메모리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충격을 완충할 정책적 안전장치 마련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반도체 정책을 연구하는 한 산업공학과 교수는 "이번 1분기 실적은 한국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메모리 공급망에서 절대적 위치를 확보했다는 신호이지만, 동시에 코스피와 GDP가 두 회사 사이클에 더 깊이 묶이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며 "호황의 과실을 산업 생태계와 가계 부담 완화로 분산시키는 후속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슈퍼사이클이 끝나는 순간 충격이 그만큼 깊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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