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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수첩] '중복상장 족쇄', 돈은 있는데 거래가 없다

"딜이 없다. " 최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을 만나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최근 수년을 돌아봐도 시장에서는 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올해 들어 수개월 동안 성사된 대형 거래를 꼽아보면 손에 꼽을 정도다.

[기자수첩] '중복상장 족쇄', 돈은 있는데 거래가 없다

(AI로 제작한 이미지.)

"딜이 없다." 최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을 만나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최근 수년을 돌아봐도 시장에서는 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올해 들어 수개월 동안 성사된 대형 거래를 꼽아보면 손에 꼽을 정도다. 거래가 줄었다기보다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거래만 남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투자 이후 어떻게 빠져나올지를 설계하는 순간 계산이 복잡해진다. 가격은 맞지 않고 회수 시점은 불확실하다. 결국 운용사들이 말하는 "딜이 없다"는 표현은 "좋은 딜이 없다"는 뜻에 가깝다. 자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는 시장이다.

이 배경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중복상장 규제 강화가 있다. 모회사가 상장사인 경우 자회사 상장을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방향인데 일반주주 보호라는 취지는 분명하다. 다만 시장에서는 규제의 방향보다 그 이후 달라질 회수 구조를 먼저 계산하기 시작했다. 투자 검토 단계에서부터 엑시트 시나리오를 다시 짜는 분위기가 퍼지는 이유다.

국내 사모펀드의 상당수 바이아웃 딜은 인수 이후 사업부를 분리하거나 자회사를 독립시켜 기업공개(IPO)로 연결하는 구조를 전제로 가격이 형성돼 왔다. 경영 효율화를 거쳐 상장 프리미엄을 반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 인수 가격 역시 그 기대를 담아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수의 마지막 단계를 상장에 두고 거래 구조를 짜는 방식이 오랜 기간 시장 표준처럼 작동했다.

대기업 계열 카브아웃(carve-out) 거래 역시 같은 흐름이었다. 그룹이 비핵심 자산을 떼어내 외부 자본을 받아 체질을 바꾼 뒤 시장에서 다시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였다. 대기업은 신규 성장 재원을 확보했고 사모펀드는 운영 개선 이후 회수 시점을 설계할 수 있었다. 상장은 단순한 자금조달이 아니라 거래 구조 전체를 완성하는 마지막 고리였다.

문제는 이 고리가 약해질 경우 투자 판단도 동시에 보수화된다는 점이다. 향후 별도 상장 가능성을 반영해 산정되던 기업가치는 할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일부 운용사들이 대기업 계열 자회사 투자 검토 과정에서 상장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다시 반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 "투자 풀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줄어드는 효과"라는 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IPO를 제외한 다른 회수 수단도 지금은 충분히 강하지 않다. 전략적투자자(SI)가 기업을 인수하는 구조는 금리 부담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대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며 이전보다 성사 가능성이 낮아졌다. 피투자기업이 배당이나 차환을 통해 투자금을 돌려주는 방식 역시 시장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대만큼 작동하기 어렵다. 결국 상장이 흔들리면 남은 회수 수단도 동시에 좁아지는 구조다.

대기업의 자금조달 전략도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소재, 2차전지, 플랫폼, 바이오처럼 선투자가 큰 사업은 별도 법인으로 키운 뒤 외부 자금을 붙여 성장시키는 방식이 반복돼 왔다. 자회사 상장이 어려워지면 내부 현금이나 차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리가 높은 국면에서는 투자 속도 자체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내 IPO 시장은 지난해부터 회수 기능이 약해졌다. 공모가 산정 부담으로 상장을 미루는 사례가 늘었고 상장 이후 유통시장 부진까지 겹치면서 사모펀드의 엑시트 일정도 뒤로 밀렸다. 여기에 자회사 IPO라는 추가 출구까지 약해지면 대규모 투자금을 쥔 운용사들도 신규 투자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중복상장 규제의 취지는 분명하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가치 희석을 겪어왔고 이중 할인 구조 역시 장기간 시장 왜곡으로 지적돼 왔다. 다만 자본시장은 출구가 줄면 입구도 동시에 좁아진다. 보호를 위한 장치가 자금의 흐름까지 늦춘다면 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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