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문근식 교수 제공
핵추진잠수함(핵잠) 연료 협력이 늦어질 때 가장 경계할 것은 법적 권리만 강조하거나 비확산 우려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다는 사실과 상대국이 연료 이전을 승인할 수 있다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비확산 의지를 구체적인 관리 체계로 보여 주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협력의 정당성을 설명하도록 도와야 한다.
먼저 국제규범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비핵보유국의 핵무기 및 기타 핵폭발장치 획득을 금지한다. 핵분열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핵무기와 동일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NPT가 핵잠 건조에 필요한 모든 연료 거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안전조치협정과 공급국의 수출통제, 양자 원자력협정에 따른 의무는 따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한미 원자력협정까지 핵폭발장치만 금지한다고 설명하면 오류가 생긴다. 현행 협정은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의 틀이다. 협정 적용을 받는 물질을 군용 추진에 쓸 수 있는지는 별도의 법적 검토와 합의가 필요하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민수용으로 들여온 핵물질의 사용 목적을 일방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 구분이 대미 협상의 출발점이다.
한국이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은 중요한 신뢰 자산이다. 고농축 연료에 비해 핵무기로 직접 전용하기 어려워 비확산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핵무기를 절대로 만들 수 없는 물질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추가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와 관련한 우려가 남는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설명이 오히려 한국의 주장을 강하게 만든다.
저농축 사용 원칙을 특별법에 명확히 반영하면 정책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국내법의 선언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국내법은 한국 정부의 행동을 규율하고, 국제적 의무와 공급국의 권한은 해당 조약과 합의에 따라 판단된다.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제한을 국제사회가 확인할 수 있는 절차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절차의 핵심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다. 포괄적 안전조치협정 제14조는 금지되지 않은 군사활동에 핵물질을 사용하는 경우의 절차를 두고 있다. 이는 한국이 통보만 하면 원하는 기간에 사찰을 배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기존의 평화적 이용 약속과 충돌하지 않아야 하며, 안전조치 비적용의 기간이나 상황, 관련 물질의 관리 등을 IAEA와 약정해야 한다. 군사기밀 보호와 비전용 검증을 함께 충족할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이미 제14조에 따른 협의 개시 의향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제는 선언의 반복을 넘어 구체적 쟁점을 협의할 단계다. 연료가 반입되고 보관되며 사용된 뒤 처리되는 전 과정에서 누가 책임지고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정리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잠수함의 존재 자체만이 아니라 핵물질에 대한 확인이 끊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협상안으로 연료의 임의 전용 금지, 수량과 이동의 기록, 물리적 방호,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원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봉인이나 공급국 회수 방안도 기술적 가능성과 책임 분담을 검토해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어느 방안도 한국이 단독으로 선언한다고 검증 체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IAEA와 공급국이 수용할 수 있고 실제 운용도 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대미 설득에는 민·관·군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법적 협력 경로를, 군은 필요한 작전능력과 핵무장 계획이 없다는 점을, 연구기관은 관리·검증 대책을 설명해야 한다. 산업계는 연료 공급 일정과 국내 건조계획의 연결을 제시할 수 있다. 국회는 여야가 함께 비확산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한국의 정책이 정권에 따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미국의 우려를 모두 부당한 간섭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의회가 다른 비핵보유국에 미칠 선례를 묻는다면 한국 모델이 검증 공백을 어떻게 줄이는지 답해야 한다. 호주나 브라질의 협의 경험은 참고하되 각국의 연료와 협정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추진하니 우리도 자동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국내적으로도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협상 지연을 이유로 이미 보유한 민수용 핵물질을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승인받자는 접근은 피해야 한다. 공급 조건 위반 논란이 생기면 핵잠 사업뿐 아니라 민간 원자력 협력의 신뢰까지 손상될 수 있다. 연료의 권리관계와 허용 용도를 확인하는 일은 사업을 늦추는 행정이 아니라 더 큰 지연을 막는 준비다.
공개할 수 있는 비확산 원칙은 일관되게 설명하고, 군사기밀은 보호하는 공통 지침도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설명이 달라지면 신뢰를 쌓기 어렵다.
한국은 비확산 체제 안에서 해양안보에 필요한 능력을 확보하려는 국가다. 저농축 사용 원칙은 그 의지를 보여 주는 출발점이며, 국제적 신뢰는 검증 가능한 실행에서 완성된다. 정부는 미국에 협력을 요청하는 동시에 우려를 해소할 구체적 약정을 제안해야 한다. 우리의 원자력 외교는 정당성에 대한 주장과 책임 있는 관리 능력을 함께 보여 줘야 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정충신 선임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