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대구대 글로컬라이프대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올해 상반기에만 검찰이 경찰에 다시 수사하라며 돌려보낸 사건이 6만5913건이다. 같은 기간 경찰이 끝내지 못하고 미제로 등록한 사건은 10만2567건에 이른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은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문을 연다. 그런데 정작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남길 것인지 정할 형사소송법 개정은 아직 결론이 없다. 헐어낼 날짜는 정해졌는데 새로 지을 집의 설계도는 백지인 셈이다.
논쟁의 뿌리에는 단순한 질문 하나가 놓여 있다. 검찰의 권한 독점이 문제였다면, 그 해답이 왜 경찰의 권한 독점이어야 하는가. 검찰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진단에는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 그러나 그 진단에서 그러니 경찰에 맡기면 된다는 처방이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한 기관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명제와 다른 기관은 신뢰해도 좋다는 명제는 전혀 다른 말이다. 권한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일은 개혁이라기보다 이동에 가깝다.
숫자는 그 이동의 부담을 보여준다. 경찰이 해결하지 못해 미제로 등록한 사건은 2018년 13만여 건에서 최근 4년 연속 20만 건대를 넘어섰다. 검찰 사정도 다르지 않아 전체 미제 사건은 2021년 3만여 건에서 지난해 9만여 건으로 불어났다. 어느 한쪽의 태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형사사법 체계 전체가 처리 능력의 한계에 닿아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런 국면에서 잘못을 걸러내는 장치를 하나 더 걷어내는 선택이 시민에게 무엇을 돌려주는지 따져볼 일이다.
통계마저 갈린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검찰청은 형사사건 평균 처리 기간이 2020년 142.1일에서 2024년 312.7일로 두 배 넘게 늘었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경찰 단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줄었다고 반박했다. 같은 제도를 두고 두 기관이 정반대 수치를 내미는 상황 자체가, 이 논쟁이 사실 위가 아니라 각자의 진지 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해외 사례를 근거로 삼는 주장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 어디에도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없다는 말이 자주 인용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영국은 근대 경찰 출범 이후 오랫동안 수사와 기소를 경찰이 함께 쥐고 있었고, 그 독점의 폐해가 쌓이자 1986년 국립기소청을 세워 기소를 떼어냈다. 경찰 독점을 깨는 방향이었던 셈이다. 미국 연방검사는 대배심의 승인을 얻어 직접 수사할 수 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검사가 수사의 주재자로서 법적 책임을 진다. 일본도 경찰에 수사를 맡기되 검사에게 보충적 수사권을 남겼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수사를 한 기관이 통째로 쥐고 누구도 되물을 수 없는 구조를 택한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검찰이냐 경찰이냐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되물을 수 있게 할 것인가다. 어떤 조직이든 되묻는 존재가 사라지면 무뎌진다. 검찰이 오랫동안 비판받은 것도 그 되물음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검사라는 직업이 유독 부패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같은 조건에 놓인 경찰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풀릴 문제였다면 진작 풀렸을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구조의 문제였다.
되묻는 존재가 사라지면 무뎌진다는 이 원리는 수사기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도 경쟁이 헐거워지면 같은 길을 걷는다. 지지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곳에서는 우리가 뽑은 사람이 무엇을 설계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유권자도 굳이 묻지 않게 된다. 대구가 오래 지켜 온 정치적 일관성은 분명한 자산이지만, 그 자산이 무엇으로 돌아왔는지 묻지 않는 순간 안정은 정체로 바뀐다. 다행히 이 되물음은 제도를 새로 만들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 유권자가 묻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작동하고, 선택의 순간에 가장 정확한 답을 얻는다. 그렇게 쌓인 질문이 우리가 뽑는 사람의 수준을 만들고, 그 수준이 결국 제도의 수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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