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퇴근길 교통지옥, 경적과 분노가 여기저기 튀어 나온다.
그때 시인은 오래전 스승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그는 우리 존재가 길가에 핀 한 포기 풀과 같다고 했다.
길가에 풀, 들판의 꽃은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없다.
잘난 체, 못난 체 할 필요도 없어 그저 주어진 여건대로 살아간다.
애당초 잘났네 못났네 욕하고 싸우질 않는다.
그는 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 난 일, 일어 날 일에 대한 머리 속 영상도 돌리지 않는다.
영상을 돌리지 않으니 회환과 분노, 불안이 엄습하지 않는다.
삶이, 생명이 원래부터 특별하지 않았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안다.
우리 위에 1천억 인류의 시체가 쌓여 있고, 80억 인류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도 곧 갈 것(死)을 너무 잘 알기에, 삶에 큰 의미 부여나 해석의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그저 존재하면서 들풀처럼 만물과 열어 놓고 닿는다.
그렇다고 체념이나 포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존재로만 존재를 100% 채운다.
글로벌 AI가 세계를 장악하는 지금, 코드와 로직이 없어도 피어날 수 있는 그것, AI는 아직 갖지 못한 그것을 시인은 노적봉에 올라 쫓고 있다. 선광(本名金鐘國) 시인은 2022년 문예지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첨단 자본 속 고(苦)의 관점에서 물질과 정신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퇴근길 교통체증. /=善光
<계곡에 내려놓다>
-선광-
이번 인연은 다했다 벗이여
여기까지 하자 벗이여
이제 소환은 멈추고 깊은 계곡으로 향하자
골짜기 안쪽
깊은 사연 두 손에 모아 내려놓자
다음 인연에선 처음처럼 신실히
너두 참 고생 많았다
다음 육도윤회에선 도회지 말고
귀어귀촌해 막걸리 한 잔 걸쳐 놓자
먼저 내려간다 벗이여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상처 준 언행 있었다면
저간의 진심으로 오버랩해다오
그래, 체념과 냉소의 세계를 맴돈
내가 틀렸다 벗이여
굿바이 친구여
(*오버랩 : 한 화면에 다른 영상을 겹쳐 먼저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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