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정치권은 다시 개헌에 몰두하고 있다. 4년 중임제, 국회 권한 강화 등 권력 구조 개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각 국민의 삶은 훨씬 현실적인 위기와 맞닿아 있다. 주유소 가격은 출렁이고, 산업 현장은 핵심 광물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절박한 질문은 누가 권력을 갖느냐가 아니라 국가가 버틸 수 있느냐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자원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 원유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그중 상당량은 중동을 통과하는 해상 운송로에 묶여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원유 수입의 절반 이상이 지나는 길목이다. 이 통로가 흔들리는 순간, 국내 경제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정의 유류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의 핵심 원료인 리튬, 니켈, 코발트 역시 특정 국가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일부 광물은 80% 이상을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는 공급망이 한 번 흔들리면 생산 차질은 물론 산업 경쟁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자원은 더 이상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자원 확보에 실패한 국가들은 단순한 경제위기를 넘어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1973년 1차 오일 쇼크 이후 미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고,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 약화와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과 산업 생산의 위축으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고, 결국 정권이 교체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오늘날 상황은 오히려 더 복잡하다. 과거에는 원유 중심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에너지와 첨단 산업 자원이 동시에 얽혀 있는 다층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산업은 특정 광물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공급망은 지정학적 갈등에 노출되어 있어 과거보다 충격은 더 빠르고, 파급력은 더 크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원 외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공한 비즈니스와 적폐 사업이라는 극단적 평가 속에 방치되었고, 그 사이 현장 전문가들은 사라졌다.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불확실성이다. 주요국은 이미 방향을 정했다. 미국은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유럽연합은 핵심 원자재 확보를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주도의 장기 투자로 안정적인 자원 확보 체계를 구축해왔다. 이들 국가는 이미 자원을 경제 정책이 아닌 안보 전략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 필요한 개헌은 권력 구조를 나누는 개헌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담보하는 개헌이다. 헌법은 단순한 권력 배분의 틀이 아니라 국가의 우선순위를 선언하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자원의 개발과 이용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는 에너지와 핵심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국가의 기본 책무로 명확히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자원 확보와 비축을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지속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권 변화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원 주권에 대한 장기적 비전도 필요하다. 해양 자원, 심해 광물, 미래 자원 확보까지 국가 전략으로 명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의 설계가 아니라 생존의 설계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개헌할 것인가이다. 그 답이 국민의 생존이 아니라면, 그 어떤 개헌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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