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박재명 수필가
6남매 가족들의 8월 나들이는 영동 황간에 있는 반야사 부근 펜션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펜션 앞에는 속리산에서 발원한 영천이 백화산 아래로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백화산 산그늘은 일찌감치 계곡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펜션 앞 울창한 숲을 산책하고, 영천에 발을 담그며 모처럼 시원한 여름휴가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영천을 따라 월류봉 둘레길을 걸으며 반야사를 탐방했다. 백화산과 맑은 하늘빛이 반야사 앞 잔잔한 연못에 담겼다. 반야사 대웅전 앞에 자리한 배롱나무는 붉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배롱나무는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반야사 배롱나무 붉은 꽃이 불심을 불태우며 백일 동안 기도하는 듯도 하지만 푸른 나뭇잎과 섞여 절제를 가르쳐 준다. 그 꽃나무가 사찰의 분위기의 매력을 더하여 불자는 물론 사진작가들과 일반인들의 발길을 이끈다.
배롱나무는 껍질을 매년 벗어던지고 매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모습이 번뇌를 벗어내는 수행자와 같다는 의미에서 사찰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이렇듯 고즈넉한 산사에는 대표하는 꽃나무들이 있다. 이를테면 화엄사의 홍매화, 송광사에 금목서와 은목서, 선운사의 동백꽃 등이다. 사찰이 일부러 절꽃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이유와 의미가 있어 사찰을 탐방하는 의미를 더해 준다.
배롱나무꽃을 보면서 한꺼번에 피었다 한 번에 지는 법이 없는 나라꽃 무궁화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을까지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무궁화 꽃을 보면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어찌 이리 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면 또 다른 꽃이 피어오르길 끊임없이 반복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력이 강하다. 수많은 외란과 내란을 겪으면서도 결코 완전히 꺾이지 않고 찬란한 문화를 이어온 우리 민족에게 이보다 더 상징적인 꽃은 없다고 생각해 본다.
1910년부터 일본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역사와 전통문화를 차례로 말살해나갔다. 말과 글과 문화 모두 제거의 대상이었지만, 민족의 표상인 무궁화도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리던 수난기가 있었다. 무궁화는 피부병이나 염증 관리에 좋은 약용식물이라는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일제는 사람이 가까이하면 안질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궁화는 우리의 민족성처럼 결코 없애버릴 수 없는 나무로 남았다.
올해도 광복절이 지나갔다. 일제의 강점기에서 벗어나 우리 손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있었던 뜻깊은 날이다. 봉황이 품고 있는 무궁화꽃이 우리나라 대표기관인 청와대의 상징이다. 광복절에 태극기도 휘날리고 심지어 성조기까지 등장하는데 우리꽃 무궁화는 보기 드물다. 광복의 뜰에 무궁화도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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