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기초과학 토대 없이는 한계에 직면
우수 인재 배출해도 수용할 연구생태계 부족
과학기술 강국, 대학에 양질 일자리 확충을
송지준 카이스트 교수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비엔나 인근의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원(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Austria, ISTA)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 불릴 만큼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비발디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활동한 도시이다.
나는 “왜 다른 도시와 달리 비엔나에는 이처럼 많은 음악가들이 모였을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17~18세기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유럽 전역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되었고, 거장들이 활동하면서 그들을 동경하는 음악가들이 다시 비엔나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은 과학기술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어떻게 미국은 과학기술 강국이 되었으며, 중국은 어떻게 급속히 그 반열에 올라섰는가?” 미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를 지속하며 축적한 결과가 오늘날의 과학기술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반면 중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음악가를 후원했던 것과 유사하게,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자국 인재, 그리고 미국·유럽에서 귀환한 연구자들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현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추격하거나 앞서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1960년대 경제 개발 초기부터 “과학기술 강국”을 국가적 목표로 삼아왔다. 오늘날 반도체, 자동차, 국방 산업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술 강국’으로 도약한 것은 분명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기초과학이라는 토대 없이는 결국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은 아직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해답은 무엇인가. 그 실마리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찾을 수 있다. 비엔나가 음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무대-즉 충분한 일자리와 안정적인 지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우수한 박사급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충분히 수용할 연구 생태계가 부족하다. 그 결과 많은 연구자들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떠나 타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마치 오랜 시간 정성껏 키운 열매가 풍성하게 맺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담을 그릇이 없어 남의 손에 넘어가거나 그대로 썩어가는 상황과도 같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기초과학연구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에 양질의 연구 일자리를 확충한다면, 우리가 길러낸 인재들을 국내에 머물게 하고 외국의 우수한 한국 연구자들이 들어오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단순한 기술 강국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기초과학까지 강한 진정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것인지는 결국 지금 우리의 정책 방향에 달려 있다.
송지준 편집위원 /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송지준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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