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공공부문 소프트웨어(SW)·정보통신기술(ICT) 장비·정보보호 수요예보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사업 규모는 6조4,737억원으로 전년보다 4.2% 늘었고, 사업 건수도 1만6,274건으로 5.6% 증가했다. 겉으로 보면 공공 정보화 투자가 안정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보안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보보호 분야는 이번 수요예보에서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 공공부문 정보보호 관련 사업 금액은 9,733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7,948억원보다 22.5% 늘었다. 전체 사업 증가율 4.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정보보안 제품은 2,043억원으로 18.5%, 정보보안 서비스는 6,678억원으로 19.0% 증가했다. 물리보안 제품도 635억원으로 79.4%, 물리보안 서비스는 377억원으로 46.4% 늘었다. 공공기관들이 정보보호를 부수적인 항목이 아닌 필수 투자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최근 잇따른 침해사고와 AI 전환 가속화가 공공부문에도 강한 경각심을 준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곧바로 보안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부문은 해마다 정보화 예산이 증가해도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발주 지연, 단년도 예산 구조, 유지관리 중심 집행, 전문 인력 부족 같은 문제가 반복돼 왔다. 예산이 늘어도 그것이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체감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수요예보 역시 이런 구조적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정보보호 예산은 늘었지만, 현장 체질 개선은 아직 과제
이번 조사에서 소프트웨어 구축 사업은 4조9,68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운영·유지관리 사업이 3조4,313억원으로 전체 구축 사업의 69.1%를 차지했다. 이는 공공 시스템이 여전히 기존 인프라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스템 환경구축 사업이 2,239억원으로 전년보다 49.4%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공공 정보화 사업은 여전히 운영 유지 중심 구조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보호 예산이 늘더라도 근본적인 보안 아키텍처 개편이나 선제적 방어 체계 구축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보안 제품 추가 도입보다도, 공공 시스템 전반에 보안을 기본 설계로 녹여내는 구조 전환이다.
특히 정보보호 수요 가운데 서비스 비중이 68.6%로 가장 높게 나타난 점은 의미가 있다. 이는 단순한 장비 구매보다 관제, 운영, 진단, 대응과 같은 보안 서비스 수요가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공공기관 내부의 자체 보안 역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외부 전문 서비스 활용 자체는 필요하지만, 내부 통제력과 운영 이해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고 발생 시 책임과 대응 체계가 흐려질 가능성도 있다.
AI·클라우드 확산, 보안 수요 키웠지만 공격면도 함께 넓어졌다
이번 수요예보에서 인공지능 관련 사업 규모는 지난해 2,849억원에서 올해 3,903억원으로 37.0% 급증했다. 공공부문이 AI 기반 행정서비스와 자동화, 데이터 활용 체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AI 전환이 곧바로 새로운 보안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수집과 연계, 모델 운영 환경, 외부 서비스 연결, 권한 관리, 개인정보 보호, 공급망 보안 같은 문제가 한꺼번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AI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도 보안 설계를 사후 보완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예산은 늘어도 실제 위험은 줄지 않을 수 있다.
상용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구매 수요가 4,280억원으로 전년보다 16.3% 증가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 가운데 SaaS 구매 수요는 406억원으로 집계됐다. 공공부문이 구축형 시스템에서 이용형 서비스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클라우드와 SaaS 확대는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니다. 데이터 주권, 접근권한 통제, 설정 오류, 위탁 운영 리스크, 공급망 취약점 문제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내부 보안 역량과 정책 체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서비스 활용만 확대되면, 편의성과 효율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보안 책임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네트워크 장비 수요가 2,498억원으로 전년보다 증가한 점도 주목된다. 공공기관의 연결성과 데이터 이동이 확대된다는 의미지만, 동시에 공격자가 노릴 수 있는 접점도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트워크 확장은 단순히 장비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세분화된 접근통제와 상시 모니터링, 제로트러스트 기반 설계와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연결성 확대가 곧 취약점 확대가 될 수 있다.
공공 보안, 예산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발주 구조와 거버넌스 개선
이번 발표는 공공부문 정보화 수요가 AI, 클라우드, SaaS 등 신기술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과기정통부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공공부문의 효율적 투자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 소프트웨어·정보통신기술·정보보호 산업의 동반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도규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최근 공공부문의 소프트웨어, 정보통신기술 장비, 정보보호 수요가 AI와 클라우드, SaaS 등 신기술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민간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보안 현장에서는 여전히 냉정한 시선이 필요하다. 공공 보안 예산은 사고 이후에야 확대되는 경우가 많고, 사업 추진도 규정 준수와 감사 대응 중심으로 흘러가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정보보호 수요가 늘어나도 같은 유형의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보안이 사업 마지막 단계에서 덧붙는 항목이 아니라 기획, 설계, 조달, 구축, 운영 전 과정에 내재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기부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AI·클라우드 전환이 빨라지는 만큼 정보보호 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흐름”이라며 “하지만 예산 증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보안 내재화와 운영 역량 확보로 이어지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기관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보안과 책임 체계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비용만 늘고 위험은 줄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앞으로는 발주 구조와 거버넌스, 운영 체계까지 함께 손보는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요예보는 공공 정보화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서 정보보호의 위상이 훨씬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에 이는 지금의 공공 디지털 전환이 그만큼 더 많은 위험과 부담을 안고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공공 정보화의 성패는 얼마를 집행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설계하고 운영했는지에 달려 있다. 정보보호 예산 9,733억원이라는 숫자가 실질적인 보안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한 번 숫자만 늘어난 투자로 남을지는 이제 각 기관의 실행력과 정부의 정책 보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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