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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향에서 외면받는 지역 예술인

지역축제나 문화 행사장에 가보면 관심은 언제나 화려한 메인 무대에 쏠린다. 수천만 원을 받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순간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반면 지역 예술인들은 짧은 공연 시간과 상대적으로 적은 출연료를 감수하며 무대에 오른다.

고향에서 외면받는 지역 예술인

김잠출 수필가

지역축제나 문화 행사장에 가보면 관심은 언제나 화려한 메인 무대에 쏠린다. 수천만 원을 받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순간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반면 지역 예술인들은 짧은 공연 시간과 상대적으로 적은 출연료를 감수하며 무대에 오른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예산 배분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지역 문화정책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문화기관이 운영하는 인문학 강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확인해 보니 상당수 지역의 돈이 수도권 유명 강사에 집중되었다. 방송 출연이나 베스트셀러 로 뜬 작가와 저자, 서울의 교수가 강연자로 내려 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받아 갔다. 물론 이들의 전문성과 대중성, 관중동원력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 다양한 시각과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균형이다.

지역에는 오랫동안 '울산'을 연구하고 '울산'에 천착하고 있는 연구자도 있고 학자도 있다. 지역사와 산업화를 기록해 온 작가와 시인도 많으며,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강사와 예술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지역의 역사와 정서, 정체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울산'과 '울산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각종 공공 프로그램에서 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될까.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서울 일극 주의' '서울 중심주의'라는 문화 사대주의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서울 유명 인사라야 행사의 품격이 높아지고 성과를 인정받는다고 여기거나 보도자료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등장해야만 "행사다운 행사를 했다"느니 "실적이 돋보인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면 문제라 할 수 있다. 울산의 세금을 쓰면서 우선순위는 지역 인재보다 외부 유명인에게 주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관행으로 치부하면 안 될 일이다.

이 관행은 문화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역 예산이 외부 강사나 가수와 기획사, 공연단체로 가면 울산 시민이 낸 세금은 모두 외부로 유출된다. 반면 지역 예술인과 강사에게 지급하면 지역 상권과 소비시장으로 연결된다. 이러면 문화 예산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투자가 되는 것이다. 지역 인재에 대한 지원은 문화정책인 동시에 경제정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인 문화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역 예술인이 활동 기반을 잃으면 젊은 세대는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라고 여긴다. 재능 있는 인재가 탈 울산하고, 남아 있는 문화 생태계는 점차 약해진다. 먹성 좋은 외래종의 유입으로 토종 생물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역 역사와 정체성을 기록하고 계승하려는 사람도 줄게 된다. 결국 지역은 고유한 이야기를 잃게 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문화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지역 예술인이 고향에서 대접받는 날이 과연 올까? 그런 날은 절로 오지 않는다. 예술인들부터 나서서 제도개선을 선행해 나가야 한다. 우선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강연과 문화 행사에 지역 강사와 예술인을 일정 비율 참여시키는 '지역 인재 의무 할당제'를 도입하고 지역 강사와 예술인 DB를 구축해 공개적이고 투명한 선정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강사료 차별을 고쳐야 한다. 강사료와 출연료 지급 기준을 체계화하고 공개해 지역과 외부 인력 간의 불합리한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셋째, 지역 예술인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 유명 가수 한 명에게 지역 예술인 30명분을 주니 지역 예술인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이 더 의미 있는 투자인가.

넷째, 지자체장과 공무원의 각성이다. 그들이 서울 사대주의에 젖어 있는 한 잘못된 관행은 바뀌지 않는다.

다섯째, 주민들도 문화예술 예산을 감시하고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 지역축제나 행사의 목적이 지역과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있다면 외형적 규모보다 내용, 유명인보다 지역민의 참여에 더 큰 가치를 둬야 되는 일이 아닌가. 지역 사람과 이야기에 투자할 때 비로소 지역 문화는 뿌리를 내리고, 지역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흔히 지역 예술인은 지역 문화의 뿌리에 비유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자라고  태화강이 수 백 개의 지천과 지류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역 문화도 지역 예술인이라는 숱한 뿌리가 이어가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외부의 이름값보다 우리 지역의 예술인과 강사들의 실력과 가능성을 믿어주면 좋겠다. 특별한 대우나 실력에 비해 더 나은 대접을 바라는 게 아니다. 자기 땅의 문화와 예술인을 키우지 않는 지역에 지역 문화의 미래는 없다. 그리고 지역 문화는 지역 사람이 주인공이 될 때 비로소 꽃을 피운다고 나는 믿는다.

김잠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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