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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겨를]살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모든 국정 현안에서 사이다 같은 결단력을 과시하던 이재명 대통령과 지도부였지만, 유독 부동산 시장 앞에서는 ‘대출 틀어막기’ 외에 뚜렷한 철학이 보이지 않는 임기응변뿐이었다. 돈줄이 막히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집을) 살 수가 없다”며 아우성쳤다.

[겨를]살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모든 국정 현안에서 사이다 같은 결단력을 과시하던 이재명 대통령과 지도부였지만, 유독 부동산 시장 앞에서는 ‘대출 틀어막기’ 외에 뚜렷한 철학이 보이지 않는 임기응변뿐이었다. 돈줄이 막히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집을) 살 수가 없다”며 아우성쳤다. 결국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동산 민심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부·여당에 뼈아픈 심판을 내렸다.

선거가 끝나자,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난무하는 대책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정부·여당은 여전히 ‘집을 사는 것’(BUY)만이 부동산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낡고 퇴행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대책의 뼈대는 ‘닥치고 공급’과 ‘대출 완화’다. 청년과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보증금과 주택 구입 자금을 빌려줄 테니 어서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라는 식이다.

벌써 잊었는가. 무분별한 전세대출 확대가 전세가격을 밀어 올리고, 이것이 갭투자의 불쏘시개가 되어 수많은 청년과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참사를 겪은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다.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방치한 채 또다시 빚을 내어 주거 불안을 메우라는 정책은 청년세대를 빚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무책임의 극치다.

게다가 ‘어떤 주택을, 누구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진 공급 물량 숫자는 공허하다. 공공의 토지와 용적률, 금융 혜택을 몰아준 ‘공공지원 민간임대’마저 의무임대기간이 끝나면 민간사업자가 막대한 매각 차익을 독식하는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공공의 자원이 투입됐음에도 공공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민간의 자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정부는 태연히 방치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집값 변동률, 주택 인허가 착공 호수, 가계부채 총량 같은 거시 지표가 넘쳐난다. 그 어디에도 시민의 구체적인 ‘삶’(LIVE)을 증명하는 숫자는 없다.

서울의 작은 원룸에 사는 내 딸은 정부가 저금리로 집값의 최대 80%까지 빌려준다는 청년대출 소식을 듣고 조금 더 넓은 집을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매달 감당해야 하는 원리금을 계산해보고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것이 바로 사(BUY)기도 힘들고, 살(LIVE)기도 힘든 기막힌 모순의 민낯이다. 집값과 금리의 덫에 걸려 집을 사기도 어렵고, 치솟는 주거비와 주거 불안에 밀려 집 없이 살기도 힘든 사회.

‘집을 사는 것’만이 주거 안정의 유일한 답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가 할 일은 위태로운 주거 사다리를 세워두고 청년과 서민의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니다. 사다리를 타지 않아도 벼랑 끝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두 발을 딛고 선 ‘바닥’을 단단하게 다져주는 일이다.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소득이 적어도 원하는 곳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촘촘한 권리 보장이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살(BUY) 수도 없고, 살(LIVE) 수도 없다”는 시민들의 비명을 끝내 외면한다면, 다음 심판의 날에 정부·여당이 마주할 민심의 파도는 지난 선거보다 훨씬 더 거셀 것이다.

김수동 돌봄주거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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