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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같은 아시아, 다른 운명'…AI가 가른 자본시장 지도 [이슈분석]

AI 자본 흐름의 다음 시험대 투자자들이 다음으로 주시하는 것은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다. 이들의 자본 지출 계획이 AI 사이클의 깊이와 지속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같은 아시아, 다른 운명'…AI가 가른 자본시장 지도 [이슈분석]

대만·한국 증시 사상 최고치, 인도·동남아는 두 자릿수 하락

TSMC·삼성·SK하이닉스 시총만 3.3조 달러…유럽 기술주 전체 압도

◆…(사진=나노바나나2 제작)

AI가 글로벌 자본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아시아 안에서도 명암은 뚜렷하게 갈린다. 반도체와 AI 공급망 핵심에 들어선 한국과 대만은 유럽 주요국 시장을 차례로 밀어내며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는 반면, 비슷한 에너지 수입국이지만 AI 수혜에서 비켜난 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은 두 자릿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 한때 아시아 기술의 대표 주자였던 일본은 '뒷자리'를 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7일 시가총액 약 4조3천억 달러의 대만 증시는 이달 초 유럽 최대 시장인 영국을 추월했고, 한국도 약 1400억 달러 차이로 영국 추월을 노리고 있다. 기술주 비중이 높은 두 시장은 지난 7개월 동안 독일과 프랑스도 차례로 앞질렀다. 7개월 전만 해도 유럽 뒤편에 줄 서 있던 두 시장이 글로벌 시장 순위를 단숨에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는 새로운 석유…AI 공급망 과점이 만든 격차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 한국의 메모리 양강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세 회사는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업체로 알려져 있다. 올해 들어 TSMC 주가는 40% 이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80% 넘게 급등했다.

TSMC 시가총액은 약 1조8천억 달러로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에 올라섰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치면 약 1조5천억 달러다. Stoxx Europe 600 지수에 포함된 모든 기술주의 시가총액을 다 더해도 약 1조4천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이안 샘슨은 "한국과 대만의 급부상은 반도체가 '새로운 석유'로 불리는 장기 메가트렌드와 가격에 둔감한 최근 AI 투자 붐이 결합된 결과"라며 이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의 과점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UBS 글로벌 자산관리의 중화권 주식 책임자 에바 리는 "이 추세는 기술과 비기술 부문 간의 격차 확대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유럽에서도 일부 AI 관련 주식이 올해 강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기술주 비중이 높은 한국과 대만에서 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실물 경제 지표도 같은 방향이다. 지난달 대만의 수출 주문은 16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한국 수출도 반도체 출하 호조에 힘입어 두 달 연속 40% 이상 늘었다.

전쟁도 못 막은 아시아 내 자본 쏠림

AI가 만드는 격차는 같은 대륙 안에서 더 극명하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분쟁이 2월 말 발생한 이후 아시아 시장은 일제히 유가 상승 충격으로 흔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금은 다시 AI 관련주로 돌아왔다. 이란 전쟁 이후 대만 가권지수(TAIEX)는 약 10% 상승해 주요 시장 중 최고 성과를 기록했고, 한국 코스피도 약 4% 올랐다. 중국 CSI 300과 일본 닛케이225도 소폭 상승했다.

그 외 지역은 약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인도 니프티50 지수는 약 5% 하락했고, MSCI 아세안 지수는 약 7% 떨어졌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10% 이상 빠졌다. 비슷하게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이지만, 'AI 공급망 안에 있느냐'에 따라 시장 평가가 갈린 셈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전략가 마빈 첸은 "남아시아가 북아시아의 기술 중심 경제에 비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AI의 부재"라며 "한국, 대만, 일본 역시 석유 의존도가 높지만,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으며 남아시아는 지역 기술 공급망에 더 적극적으로 편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게리 탄은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자본이 기술 중심 경제로 계속 유입되는 한 이러한 격차는 지속될 수 있다"며, 이 현상을 "장기적 기술 혁신과 단기적 전쟁발 거시 스트레스가 충돌하는 아시아의 핵심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대만의 그늘…'두 종목'에 매달린 시장

다만 한국과 대만 시장의 환호 뒤에는 그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코스피 지수의 42%를 차지하며, TSMC 역시 대만 가권지수에서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AI 사이클이 꺾이거나 특정 종목에 균열이 생기면 지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지수 쏠림에 대한 경고도 그래서 나온다.

물론 공급망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대만에서는 미디어텍, 델타 일렉트로닉스 등 다른 종목 상승으로 TSMC의 지수 비중이 최근 고점에서 다소 낮아졌다. JP모건 자산운용의 신흥시장 및 아시아태평양 투자 전문가 프란체스코 찬은 "지수 수준에서는 아시아의 AI 스토리가 좁아 보일 수 있지만, 공급망 전반으로 보면 훨씬 광범위하다"며 "대형 기업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AI 설비 투자가 점차 확산되면서 기회 역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빈자리…'피지컬 AI'와 반도체 재진입 승부수

이 'AI 지도' 위에서 일본의 위치는 미묘하다. 닛케이225는 이란 전쟁 이후 소폭 상승하며 큰 낙폭은 면했지만, 한국·대만이 누리는 폭발적 시가총액 확대 행렬에서는 한 발 비켜서 있다. 한때 아시아 기술의 대표 주자였던 일본이 AI 사이클의 중심에서 빗겨난 셈이다.

일본의 강점은 소비자 인터넷 플랫폼이 아니라 다음 단계 AI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 사이클은 로봇공학, 산업 정밀 기술, 이른바 '피지컬 AI'의 시대로,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공급업체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은 일본 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고, 엔화 약세는 조달과 현지 채용 비용을 낮추는 요인이다.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도 TSMC의 규슈 투자와 홋카이도에서 2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정부 지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AI 한 사이클을 놓친 자리에 '다음 사이클'을 끌어당기겠다는 구도다.

물론 회의적 시선도 존재한다. 일본은 여전히 관료주의와 복잡한 규제로 악명이 높고, 자본 측면에서도 일본의 AI 기업 투자 규모는 다른 국가들에 뒤처진다. 다만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점은 중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을 투자자들의 대안으로 부각시킬 변수다.

AI 자본 흐름의 다음 시험대

투자자들이 다음으로 주시하는 것은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다. 이들의 자본 지출 계획이 AI 사이클의 깊이와 지속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현금 흐름 대비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점차 커지고 있어, 이번 실적 시즌의 무게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같은 아시아 안에 두 개의 시장 풍경이 펼쳐지는 지금의 그림은 단순한 단기 흐름이 아니라 'AI 공급망에 들어와 있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에 대한 시장의 답이다. 한국과 대만은 그 답을 들고 출발선 앞쪽에 서 있다. 다만 소수 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는 급변하는 환경에 취약할 수 있어 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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