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강현철 논설실장
최근 미국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 사모신용은 펀드라는 집합투자기구를 통해 비공개·비상장 중견기업에 제공되는 대출이다. 블랙스톤, 블랙록, 블루아울 등 월가를 움직이는 초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사모대출 펀드에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운용사들이 ‘환매 제한’(Gate) 조치를 발동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이는 금융시장에 흐르는 유동성 경색의 전조일 수 있다. 미 사모신용 시장의 부실이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연쇄충격’(Secondary Contagion)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대비해야 할 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 사모신용 시장은 약 2조50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한 중소·중견기업들에겐 대안 금융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문제는 이들 사모신용 차입기업의 수익성이 상당히 악화돼 부도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하이퍼 스케일러에 의한 대규모 차입금 조달로 인해 이들 기업이 직면하는 금리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팬데믹 직후 제로금리 시기에 차입기업이 부담하는 금리는 평균 연 6% 수준이었지만 이후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최근은 12% 수준으로 뛰었다. 이에 따라 2023년 기준 사모신용 차입자의 약 3분의 1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사모대출을 적극 활용했던 소프트웨어 및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경쟁 심화와 실적 둔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수익성 악화 및 이자 부담 증가는 이들 기업의 채무불이행을 야기하고, 이는 사모신용펀드의 순자산가치(NAV)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5년 9월 기준으로 사모신용펀드에서 원금의 50% 이상을 상각처리한 대출이 전체 대출의 10%를 넘어섰다. 그러자 기초자산의 부실 징후를 감지한 투자자들이 “내 돈을 돌려달라”고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월가 대형 펀드들의 환매 제한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로선 이런 사모신용 리스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은행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파괴적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부실을 떠안은 주체가 대형 은행이 아닌 연기금, 보험사, 사모펀드 운용사로 분산돼 있고, 분기별 환매 상한선(NAV의 5% 안팎)이라는 방어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위험은 늘 과거와는 다른 경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첫째는 ‘마진콜에 따른 우량 자산 투매’ 위험이다. 사모펀드의 가치가 급락하면, 여기에 자금을 댄 글로벌 생보사나 연기금들은 금융당국의 규제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우량 회사채나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 수밖에 없다. 이른바 마진콜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이 동반 유동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둘째는 ‘은행과 비은행 간 끈끈한 연결고리’다. 대형 은행들이 사모신용 펀드에 제공한 한도대출 등 레버리지 라인 규모는 이미 1조달러를 웃돈다. 펀드 부실이 깊어지면 은행들이 대출 회수에 나설 것이고, 이는 결국 실물경제의 전반적인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이어져 중소기업들의 연쇄 파산을 부추길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모신용 시장의 ‘불투명성’에 있다. 장내에서 거래되는 주식·채권과 달리 사모대출은 운용사 내부모델로 자산가치를 평가한다. 시장에서는 숨겨진 부실, 이른바 ‘바퀴벌레 리스크’가 얼마나 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사모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모 자산 기반 파생상품의 얽히고설킨 고리도 미지수다. CDO(부채담보부증권)와 CDS(신용부도스와프)라는 파생상품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것과 유사하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최근 사모신용 시장 내 사기 혐의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짐을 보이고 있는 월가의 유동성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 대체투자를 적극 늘려온 국내 증권사, 보험사, 연기금 역시 미 사모신용 시장에 상당한 자금이 묶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 펀드들의 환매 동결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자산 유동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금융 시장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밀접히 연결돼 있다. 금융당국과 국내 투자기관들은 미 사모신용 시장의 환매 제한 사태를 단지 ‘강 건너 불’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해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선제적으로 재점검하고, 예상치 못한 글로벌 유동성 경색에 대응할 수 있는 가용 자금을 확보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방어벽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여년간 금융권역 간 구분은 점차 약해져 왔으며, 이로 인해 전체 금융시스템은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된 상태”라며 “사모신용펀드의 레버리지가 낮고 유동성위기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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