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토큰'(Token)은 인공지능(AI) 대규모언어모델(LLM)이 텍스트나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본 단위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토큰 데이터를 제조업의 전력 사용량처럼 기업의 실제 사업 활동, 성장성 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해 스타트업에 대출해주는 금융상품이 생겨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AI 토큰 대출'(AI Token 貸)이다.
'토큰 대출'은 토큰의 사용량이나 호출량을 지표로 삼아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공장이나 부동산 같은 전통적인 실물 담보가 없더라도 AI 스타트업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일 평균 AI 토큰 호출량이 2년 만에 1000배 이상 폭발한 중국의 데이터 생태계와 국유 은행의 과감한 여신 지원이 결합한 결과다. 이는 중국 경제의 AI화(AX)에 또다른 기폭제가 되고 있다.
'토큰 대출'은 대형 은행들과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6월 농업은행 상하이 쉬후이구 지점이 토큰 대출 상품을 출시한 데 이어 중국은행, 중신은행 등이 광저우 하이주구 등에서 잇달아 상품을 내놨다. 기업이 소비한 토큰의 양과 컴퓨팅 서비스 계약 가치 등을 다각도로 검증, 기업당 최대 3000만위안(약 62억원)의 무담보 신용 자금을 최장 3년간 대출해준다.
최근에는 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에서 지방정부 주도로 농업·중신·흥업·베이징 은행 등 6개 은행이 참여한 가운데 이좡 기업 토큰 대출이 선보여 1차로 총 20억위안(약 4000억원) 규모의 토큰 대출이 승인됐다. 이는 이 지역 소재 자율주행 플랫폼 기업, AI 운영서비스 기업 등에 지원된다.
토큰 대출은 이보다 앞서 중국 은행들이 컴퓨팅 인프라의 구축과 컴퓨팅파워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내놓은 'AI 컴퓨팅파워 대출'과 평가 정보, 자금 용도 등에서 구별된다. 컴퓨팅파워 대출은 주로 설비기술력 및 프로젝트 사업성 등을 평가근거로 삼아 인프라 구축과 컴퓨팅파워 조달 등을 지원하는 반면 토큰 대출은 디지털 운영 정보인 토큰 데이터 등으로 기업의 사업성과 신용을 평가하고 토큰 구매와 사업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모델응용기업 특화 대출이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안후이성 등 중국 주요 지역들은 토큰 대출을 통한 토큰 경제 육성을 꾀하고 있다. 광저우 하이주구, 베이징 이좡의 토큰 대출 상품은 토큰의 생산·유통·소비·사업화 전 과정을 포괄하는 지방정부의 토큰 경제 정책과 연계돼 추진된다.
이는 금융권 지원이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넘어 중국의 토큰 경제 안착을 위한 활용도 제고 및 사업화 지원 단계로 확장될 것임을 예고한다. 인프라 공급 확대, 대형 모델 사용 지원 등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의 토큰 사용량은 급증하고는 있으나, AI 응용서비스 시장 형성은 상대적으로 더딘 상황인데 토큰 대출으로 AI 응용서비스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금융과 첨단 기술 간 경계를 허문 파격적인 시도다. 미국 중심의 서구 금융권이 여전히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하드웨어 자산을 담보로 잡거나 리스크 헤지에 머물러 있을 때, 중국은 데이터 활성도라는 소프트웨어 지표를 직접 금융 자산화하는 길을 열어제쳤다.
일각에서는 토큰 소비량이 곧바로 기업의 매출이나 현금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착시 효과'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이 이런 첨단 금융 확산을 유도하는 것은 '토큰 대출'이 AI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AI 시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1위 국가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전략적 속셈이 숨어 있다. 첨단 기술 시장의 판도는 기술을 자본화하는 금융 인프라의 속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물 담보 중심의 보수적인 여신 관행에 갇혀 있는 한국 금융권과 정부 당국에 중국의 '토큰 대출'은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은영 산업은행 미래전략개발부 연구원은 "중국의 AI 육성 정책 및 금융지원이 응용 생태계 조성으로 확장 중임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내에서도 AI 응용 생태계 기업의 자금 수요에 특화된 상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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