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왕복 시범운항을 마치고 지난 13일 부산항 부두에 입항한 팬스타 아크로호. 팬스타그룹제공
국내 컨테이너선의 첫 북극항로 왕복 시범운항이 무사히 끝나면서 관심은 ‘갈 수 있느냐'에서 ’돈이 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운항 기술은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보험과 금융이 상업 항로 전환의 첫 관문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 8월 22일 부산항 신항을 출항했다. 북동항로를 거쳐 영국 펠릭스토우,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에 기항한 뒤 이달 11일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50일 동안 3만354㎞를 운항했고 화학제품·중고차·자동차 부품 등 화물 837TEU를 실었다.
해양수산부는 내년에도 시범운항을 이어가고 2030년 정기 상업 항로를 개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항해에서 확보한 항로·연료·보험 비용 자료는 후속 운항 준비에 활용할 계획이다.
걸림돌은 비용이다.
부산연구원은 정책연구 보고서 ‘부산 북극항로 연관산업 육성 전략’에서 이번 시범운항의 보험료가 수에즈 운하 경유 항로보다 4~5배 높게 책정됐다고 밝히고, 이를 상업화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극지는 기상이 불안정하고 사고가 나도 구조·수리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항로 단축으로 아낀 연료비를 보험료가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경유보다 운항 기간을 약 10일 줄일 수 있지만, 현재는 여름철 4~5개월만 운항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부산에서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항로 개념도. 함부르크는 출항 전 계획상 기항지로, 실제 시범운항에서는 펠릭스토우·로테르담·그단스크에 기항했다. 팬스타그룹 제공
지역 기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연구원이 지난 4월 부산 기업 200곳을 조사한 결과, 북극항로 사업에 진출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67.5%로 2016년 조사(25.6%)보다 41.9%포인트 늘었다. 반면 정부 정책에 맞춰 대응을 계획하거나 이미 대응 중인 기업은 15.0%에 그쳤다.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시설투자 비용 부담이 가장 많이 꼽혔고 규제·환경 제약, 정보·네트워크 부족, 전문인력 부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 38명이 참여한 역량 진단에서도 인프라나 기술보다 법·제도와 금융·서비스가 가장 시급하게 보강해야 할 영역으로 나타났다. 5대 영역을 합산한 부산의 점수는 25점 만점에 16점으로, 노르웨이(25점)보다 9점 낮았다.
정책금융은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달 연간 1200억원 규모의 ‘쇄빙·내빙선 투자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해진공이 선가의 최대 30%를 후순위 금융으로 투자하면, 선사는 선순위 금융을 더해 선가의 최대 90%까지 조달할 수 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선박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항차마다 반복되는 보험료나 운항 위험을 덜어줄 장치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부산연구원은 이 공백을 메울 방안으로 ‘북극항로 특화 복합금융·극지보험 지원 프로그램'을 6대 핵심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약 5000억원 규모의 부울경 광역 펀드 조성과 극지선박 전용 보험 4종 개발을 묶어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기업 원스톱 지원센터는 지난 9월 부산시의회를 통과한 ’부산광역시 북극항로 거점도시 조성 및 연관산업 육성 조례'에 근거한 북극항로 진흥센터와 결합해 우선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부산항에 입항한 팬스타 아크로호 조타실 모니터에 북극항로 항로도가 띄워져 있다. 사진=팬스타그룹
제도적 기반은 연말을 기점으로 갖춰진다.
국무총리 소속 북극항로위원회 설치와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 등을 담은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오는 12월 17일 시행된다. 정부는 같은 달 북극항로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선주와 화주에게 금융·보험·화물 분야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정학적 위험은 여전한 변수다.
대러 제재에 따른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가능성은 보험사와 금융기관이 북극항로 관련 상품 설계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시범운항 준비 과정에서도 미국 등 관련국과의 조율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운항으로 북극항로를 운항할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됐다.
남은 과제는 극지 운항의 위험을 누가, 어떤 비용으로 떠안느냐다. ‘북극항로 거점도시’를 내건 부산이 해양금융 중심지라는 강점을 극지 보험·금융 생태계로 이어갈 수 있을지가 다음 단계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부산=구형모 기자 hmni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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