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가전·전자산업박람회 ‘AWE 2024’의 삼성전자 전시관이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주간한국 이주선 기자] 삼성전자가 중국 가전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 가전 시장에 진출한 지 34년 만이다. 삼성전자의 중국 사업 연매출은 한때 25조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최근 현지 기업들의 기술 성장과 저가 공세 탓에 3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삼성전자는 중국 가전 사업 매출과 시장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업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일부 가전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 외주 생산으로 전환하는 등의 구체적인 수익성 강화 목표도 세웠다. 또 부진한 가전 사업 비중을 줄이는 대신 반도체, 모바일 제품 등에 몰입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사업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현지 유통 채널과 협력사에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가전과 TV 판매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다만 모바일, 반도체, 의료기기 등 주력 사업은 계속 진행한다.
삼성전자는 가전 사업은 철수하지만 모바일, 반도체, 의료기기 등의 사업은 계속 전개한다. 아울러 중국을 핵심 생산·연구개발(R&D) 거점으로 활용하는 전략도 유지한다. 삼성전자는 쑤저우에서 가전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그리고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생활가전, TV 관련 기술 연구 역시 삼성리서치 중국 연구소를 통해 계속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장 철수 배경에는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중국 가전 기업들의 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TCL, 하이얼, 하이센스, 샤오미 등 현지 가전 기업의 저가 공세에 밀려 부침을 겪어 왔다. 이에 시장 점유율도 계속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시장 조사 업체 AVC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삼성전자의 중국 가전 시장 점유율은 TV의 경우 3.62%로 5위, 냉장고는 0.41%로 13위, 세탁기는 0.38%로 15위에 각각 랭크돼 있다. 세계를 호령하는 ‘가전 명가’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만큼은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특히 TV 사업의 상황은 좋지 않다.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미국·일본 가전 기업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흡수하면서 저가형 액정표시장치(LCD) TV는 물론 삼성전자의 주력인 프리미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 홍이 인터내셔널 플라자의 삼성전자 매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 中 턱밑 추격에…삼성, 조타수 교체 초강수
중국은 과거 우리나라가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활용한 성공 방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디스플레이 ‘조달-완제품 생산’이라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며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과거 우리 가전 기업들은 ‘가성비’ 중저가 제품 위주로 기술력과 생산 능력, 그리고 고객 신뢰도를 거머쥐고 브라운관에서 LCD TV로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기회를 잡아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TV 시장 1위로 도약했다.
중국 기업들은 매물로 나온 테크 기업을 쓸어 담으며 디스플레이 기술과 노하우, 생산 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는 최근 TCL이 과거 글로벌 가전 시장을 제패한 일본 소니의 TV 부문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TCL은 1981년 일본의 TDK사의 카세트 모방품을 제조하는 업체로 시작했다. 이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현재는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글로벌 3위의 TV 제조사로 올라섰다.
TCL과 소니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6’이 끝난 직후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소니의 TV 사업부가 독립해 새로운 기업으로 출범하는 형태다. 합작법인 지분은 TCL이 51%, 소니가 49%를 각각 나눠 갖는다. 이 기업은 소니의 프리미엄 TV 브랜드인 ‘브라비아’를 사용할 전망이다. 합작법인은 내년 4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TCL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이어 프리미엄 TV 시장 톱3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다. 시장 조사 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2500달러(약 360만원) 이상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매출 기준 소니의 점유율은 15.7%로 53.1%의 삼성전자와 26.1%의 LG전자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소니의 기술력과 TCL의 제조 공급망이 합쳐지는 만큼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을 추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이센스도 2015년 일본 샤프가 운영하는 멕시코 TV 생산 공장을 인수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5년에 달하는 브랜드 사용권과 월마트, 베스트바이 등 미국 주요 유통망을 확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면서 글로벌 TV 시장 상위권 기업으로 발돋움에 성공했다. 2017년에는 일본 도시바의 TV 브랜드인 ‘레그자’도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TV 사업을 책임지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 수장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조타수 교체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고 있는 이원진 사장이 VD 사업부장을 맡는다. 기존 VD 사업부를 이끌던 용석우 사장은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사장은 사내 콘텐츠 서비스·마케팅 전문가로 통한다. 삼성전자 TV와 모바일 서비스 사업의 핵심 기반을 구축하고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사장이 풍부한 사업 성공 경험과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으로 비즈니스 턴어라운드를 주도하는 것은 물론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등의 TV 사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주선 기자 lee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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