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한국금융경제신문=김선재 기자 | 시장의 예상대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7월 이후 ‘7연속’ 동결 결정이다. 이번에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환율과 물가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이번 결정은 금융통위원회(금통위)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그동안의 전쟁 피해로 인한 파급효과를 예상하기 어렵고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금리가 이미 연내 3~4회의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한 상황에서 시장의 관심은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쏠린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2.50%로 동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중동 전쟁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 및 하방 압력이 동시에 증대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이라며 “향후 중동 사태 관련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태의 추이와 파급 영향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원칙상 공급 충격이 일시적인 경우에는 정책 시차 등을 고려해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반대인 상황에서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 충격이 일시적인 것인지 여부와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정책 방향을 판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고물가 상황과 비교해 보면 통화정책으로 적극 대응해야 될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면서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중동 전쟁과 관련해 입수되는 추가 정보와 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중동 전쟁 충격이 국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 및 지속성을 판단하면서 정책 방향을 결정해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설명처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환율·고유가는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 협상을 하기로 하면서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1470~1480원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로 한때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15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제유가도 100달러를 넘으면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석유류 가격이 9.9% 오른 영향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2.7%로, 작년 4분기 대비 0.1%p 상승했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올리기에는 경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군에서는 회복세가 더뎌 전반적인 회복세가 약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기 회복세가 더욱 축소될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도 불안하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를 두고 미국과 이란이 이견을 보이고 있고 이스라엘은 휴전 협상 대상에서 레바논은 제외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군사 공격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인 2.0%를 하회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초 전망한 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한국은행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시장은 여전히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고채 등 시장금리가 연내 3~4회 인상을 반영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올해 말까지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4월 금통위의 핵심은 연간 물가 전망치의 유의미한 상향 조정 가능성을 공식화하며 졍책 스탠스의 변화를 시사했다는 점”이라며 “5월, 늦어도 8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물가 전망치가 기존 2.2%에서 2.4~2.5%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산업간 양극화와 내수 부진이라는 어두운 이면까지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면서 “통화정책의 ‘샌드위치’ 상황을 고려할 때 연내 동결 선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인플레 압력이 확대된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의 기대 변화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하나 고유가로 인한 수요 둔화 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향후 인상 전환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이란 전개 상황 또한 불확실성이 높아 정책 변화를 주기에 쉽지 않을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반대로 하반기에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 전쟁으로 훼손된 공급망 및 에너지 인프라가 회복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인 만큼 공급 충격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반영 중인 기존 충격과 훼손된 공급망 복구, 에너지 인프라 시설 회복 소요 기간 등을 감안했을 때 더 이상 중동 사태는 일시적 충격으로 볼 수 없다”면서 “유가 상승은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가는 기존 전망치를 ‘상당폭’ 상회하겠지만, 성장은 하회할 것으로 전망한 통방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뚜렷한 시그널은 실제 데이터들이 나오는 5월부터로 예상하며 7월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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