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닉, NPE 행태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어···내부 대처 고민 많아”
“특허 관리에 내부 투자 확대 한계···AI 활용 또는 정부 지원 강화 필요”
사진=생성형 AI 이미지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미국발 반도체 특허 공세가 거세지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영업기술 노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첨단 패키징 등 차세대 메모리 분야를 겨냥한 특허 공격이 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선 기업들이 해명을 위해 내부 선행기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기술 자료의 외부 노출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개발과 생산능력 확장에 속도를 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특허 공세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대응에 투자를 별도로 배분할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IP R&D 지원을 대폭 확대해 국내 반도체 핵심 기술을 방어할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특허 괴물’ NPE 공세에 ‘무방비’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특허관리전문기업(NPE)의 특허 공격으로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조사받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ITC는 지난달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를 대상으로 관세법 337조 위반 사건에 대해 조사를 개시했다. 해당 조항은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거나 불공정한 방법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물품을 규제하는 무역 조치다.
ITC의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미국 NPE 모놀리식 3D가 두 기업이 HBM과 낸드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해당 제품의 미국 내 수입·유통·판매 금지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사실이 인정되면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 HBM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되는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출신인 천영준 비즈엔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NPE 기업들의 특허 공격은 당연히 수익화를 목적으로 한다. NPE는 제조 기반도 없고 특허를 사용하지는 않으면서도, 실제 특허를 사용해 반도체 제조하는 회사를 공격해서 로열티를 얻는 방식으로 수익화하고 있다”며, “또는 소송 중간에 협상을 통해서 협상금을 받으려는 것에 목적을 두고 기업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 만약 HBM에 NPE의 특허 기술 내용이 들어갔다는 게 입증된다면 당연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제소가 있을 시 조사를 개시하는 건 일반적인 ITC 통상 절차에 해당하고, 특허 소송 관련 비일비재한 사안”이라며, “SK하이닉스도 이번 조사 건에 대해 내부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대응에 나서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도 미국 서버용 메모리 모듈 전문 기업인 넷리스트의 제소로 5년 넘도록 법적 공방을 다투는 상황이다. 넷리스트는 지난 2000년 LG반도체 출신 홍춘기 대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설립한 회사다. 지난 2015년 삼성전자와 메모리 반도체 관련 크로스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이후 이견이 발생하면서 2020년 계약을 해지하더니 이듬해 바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역시 D램 장치와 관련 제품에 대해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단 주장이다. 넷리스트가 삼성전자에 주장한 특허 침해 건은 지금까지 총 6건에 달한다. 작년 5월에는 삼성전자가 HBM3E(5세대)에 넷리스트의 특허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ITC는 이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며, 삼성전자는 공식 답변서를 통해 반박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 GTC 2026에 전시한 삼성전자의 HBM4E 실물 칩 / 사진=삼성전자
천 변리사는 “기업들은 NPE들의 행태에 대해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고 삼성전자도 내부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소송이 주로 미국에서 일어나다 보니 배상금도 클뿐더러, 미국 법정은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도 모든 자료를 다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이를 쉽게 재판장으로 가져오게끔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NPE를 막기 위해 선행 기술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흔적이 남게 되는데, 그러면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노출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는 셈”이라며, “삼성전자 입장에선 이를 조사해 NPE들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런 위험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부 대응체계로 한계···정부 IP-R&D 지원 예산 늘려야”
반도체업계에선 이 같은 해외 기업의 특허침해소송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단순 법무 비용 부담을 넘어서, 공급망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소송 여파로 첨단 메모리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고객사 인증 일정이 지연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단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를 포함해 AMD, 구글 등 미국 주요 칩 메이커 및 빅테크 기업에 HBM, DDR5, 낸드 등 핵심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어 차질이 발생하면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단 관측이 나온다.
각 회사에선 내부 담당조직을 꾸려 외부 특허 공격에 대한 선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천 변리사는 “NPE 공격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참 어렵다. 삼성전자도 내부에 특허 IP 팀이 있고, 거기에도 우수한 전문가들이 많은데도 잘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반도체와 관련된 특허만 해도 몇십만개 이상은 될 텐데 선제적으로 점검도 하고 아무리 전략적으로 잘 준비한다 해도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특허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현재 특허청과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을 통해 기업·대학 등이 특허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R&D 방향과 핵심특허 대응, 회피·무효화 전략, 신규 IP 창출 전략 등을 세우도록 돕는 IP-R&D 전략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기업이 어떤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지 조사해서 이를 기반으로 개발 방향을 정하고, 외부 특허와의 위협 관계를 파악해 전략을 짜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허청은 IP R&D 전략지원 사업 예산을 지난 2024년 368억원에서 2025년 387억원으로 늘린 바 있으며, 올해도 상반기 1차 모집을 완료한 상태다.
천 변리사는 “기업들은 엄밀히 말해서 특허를 보험적인 성격으로 인식하지, 이게 당장 매출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업들이 여기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제품 개발부터, 시설 투자, 마케팅 등 돈이 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데 특허에 큰 비중을 할당하는 게 쉽지 않다”며,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지원해 주는 사업들이 있는데, 다만, 관련 사업 규모 자체가 너무 작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수출 기업들이 많고, 그 수출 비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중국과 미국”이라며, “두 지역 모두 특허가 굉장히 중요한 나라고, 거기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텐데, 사전에 예측되는 위험을 점검한 다음 추진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IP R&D 사업이다. 해당 예산을 더 늘려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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