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더가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중동발 유가 충격이 미국을 거쳐 국내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와 금리 인상 전망이 동시에 커졌고, 미 국채 금리 급등이 국내 채권 금리와 원화 가치까지 압박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을 확대하고도 금리 상승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은 수급보다 물가와 통화정책으로 이동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84%포인트 오른 연 4.014%에 거래를 마쳤다. 3년물 금리가 4%를 넘어선 것은 2023년 11월 1일 이후 약 2년10개월 만이다.
장기물의 상승폭도 컸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0.087%포인트 오른 연 4.54%를 기록해 202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4.5%를 넘어섰다.
최근까지 국내 국고채 금리는 향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 선반영했다는 인식 속에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가 다시 급등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매도 압력이 커졌다.
발단은 국제유가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1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약 7% 오른 배럴당 102.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가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5월 이후 처음이다.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약 6% 상승한 배럴당 107.6달러를 기록했다. 중동 정세 불안이 원유 공급 차질 우려를 키우면서 에너지 가격이 다시 글로벌 물가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미국의 물가와 금리 전망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의 8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은 한 달 전보다 4.2% 뛰었다.
물가 압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경계감이 커졌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0일 4.94%로 마감한 데 이어 장중 4.95%를 넘어섰다.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12.2bp 오른 4.55%로 뛰었고, 30년물 금리는 5.35%까지 올라 종가 기준 2004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 재무부의 시장 안정 조치에도 장기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 재무부는 최근 장기 국채 바이백의 최대 매입 규모를 기존보다 크게 확대했다. 시장에서 10~30년 만기 국채를 다시 사들여 장기물 수급을 개선하려는 조치다. 실제 최종 매입 규모는 52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시장금리는 오히려 상승했다. 채권시장에서 국채 공급과 수요뿐 아니라 향후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경로에 대한 불안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빠르게 높여 잡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0일 기준 시장이 반영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0.2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은 71.3%로 하루 전 61.2%보다 상승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가 연 3.50~3.75%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은 유가발 물가 압력이 연준의 긴축 재개로 연결될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미국 금리 상승의 충격은 국내 외환시장으로도 번졌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 1345.9원을 기록했다. 장중에는 1350원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일 1330원대까지 내려갔지만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 금리가 동시에 상승하면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달러 자산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면서 원화를 비롯한 비달러 통화에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이 원유를 대부분 수입하는 만큼 국제유가 상승은 무역수지와 국내 물가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번 시장 움직임의 핵심은 유가 상승이라는 하나의 충격이 채권과 외환시장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있다.
통상 경기 불안이 커지면 안전자산인 국채 가격이 오르고 금리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는 지정학적 위험이 원유 공급 불안을 키우고, 이것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연결되면서 국채까지 매도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내 국고채 금리도 동반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원화 약세가 겹치면 수입물가 부담까지 커져 국내 통화정책의 선택지도 좁아질 수 있다.
미국의 대규모 국채 바이백에도 장기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시장의 초점이 단순한 채권 수급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재정, 통화정책의 향방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오는 15~16일 열리는 FOMC가 글로벌 채권시장의 다음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CPI가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오거나 연준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할 경우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선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경우 국내에서도 국고채 금리 상승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이어지는 '수입된 긴축' 현상이 한층 뚜렷해질 수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충격이 원유시장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물가와 금리, 다시 한국의 채권과 외환시장으로 연결되는 경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유가와 미국 금리의 움직임이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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