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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with+] 수박과 복숭아

시장에 가면 초입부터 눈이 분주하다. 대형마트처럼 품목별로 줄 맞춰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가지고 늘어 서 있는 상품들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흠집 없는 과일을 골라내듯

좋은 사람 찾으려 계속 골라

이리저리 보고 만지는 사이

정작 쓸 인물은 곯아서 못써

이원석 시인

시장에 가면 초입부터 눈이 분주하다. 대형마트처럼 품목별로 줄 맞춰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가지고 늘어 서 있는 상품들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하나쯤은 꼭 살 게 있을 것 같은 그릇 가게도 지나고 꼴뚜기가 망신시킨다는 어물전도 지나고 튀김 어묵 순대 떡볶이가 유혹하는 분식집도 지나면 과일가게가 나온다. 과일 하면 여름 과일이 으뜸이고 여름 과일 하면 수박과 복숭아가 떠오른다.

중학생 때였다. 할아버지 생신이었고 돈 나올 구석이 없는 집구석의 돈 없는 중학생은 용돈을 살뜰히 모아 수박을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박은 큰맘을 먹고야 살 수 있는 과일이다. 살림이 빠듯하여 쉽게 구경하기 힘들었던 수박을 가족들과 나눠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수박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다. 수박이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은 가족의 행복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야쿠르트 배달을 하시는 동안, 우리 삼남매를 홀로 돌보시느라 만사가 힘겨워 짜증 밖에 남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내가 사온 수박이 맘에 안 드셨던 것이다. 꼭지가 마른 수박은 싱싱하지 않다, 네가 어리니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역정을 내시며 다시 과일 트럭에 가서 꼭지가 싱싱한 것으로 바꾸어 오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 수박은 내가 보기에는 아주 달고 맛나 보였다. 검은 줄무늬도 선명하고 두드리면 맑고 영롱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꼭지가 말랐다는 흠을 찾은 할머니는 가족 모두가 즐거워야 할 생일잔치는 잊으신 듯 수박을 바꿔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언젠가 당신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기억해둔, 꼭지가 마르면 싱싱하지 않은 거라는 논리는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물러설 수 없는 절대 가치가 되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집 세고 외골수였던 나는 수박을 들고 나와서 과일트럭으로 바꾸러 간 것이 아니라 그 길로 교회에 가서 친구들과 수박을 나누어 먹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과일은 복숭아다. 복숭아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과일이다. 한평생 ‘물복파’셨던 어머니는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하시던 때 늘 복숭아 이야기를 하셨다. 백화점 지하의 과일코너에 가면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물복숭아가 있는데 한 알에 만원씩 해서 비싸서 못 사먹지만 참 먹고 싶더라는 말씀이었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고 나서 그 백화점에 가서 물복숭아 네 개가 든 한 세트를 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복숭아를 사러 과일가게에 들르면 꼭 보게 되는 문구가 있다.

“눈으로만 골라주세요. 손으로 자꾸 눌러보면 곯아서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무르지 않은 ‘딱복’을, 혹은 잘 무른 물복을 고른다고 자꾸 만지고 눌러서 복숭아가 전부 멍이 드는 것이다. 그건 백화점도 예외가 아니어서 박스째 쌓아 놨는데도 사람들은 박스를 들춰가며 복숭아를 눌러본다.

여지없이 누르지 말라는 경고문구도 있었다. 차마 눌러보지는 못하고 개중 제일 커다랗고 탐스러워 보이는 복숭아를 샀다. 그걸 들고 집에 들어가며 내내 물복이 아니고 딱복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골몰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복숭아는 아니었지만 과연 백화점 복숭아는 커다랗고 맛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내 복숭아 효도가 그 한 번뿐이었으나 어머니는 내내 그때 일을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그 머리통만 한 복숭아는 우리 가족에게 복숭아의 이상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그 후로 늘 먹었던 복숭아는 머리통만한 백화점 복숭아가 아니라 평범한 크기에 맛있었던 과일가게 복숭아였다.

장관을 뽑는다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트럼프와 푸틴 같은 고령의 정치인들이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하는 현실 속에서 늘 바라게 되는 건 정치가 좀 더 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와 퀴어 의제에 전향적인 30대 여성 장관을 가져볼 수도 있었던 우리가, 흠 없는 복숭아를 고르며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결국은 귀하게 쓰일 과일들을 전부 곯아서 못쓰게 만드는 손을 닮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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