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전쟁이 촉발한 유가 급등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맞물리면서 이른바 'S공포',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 경기 불황 속에서 고물가가 지속되는 최악의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주식과 환율, 금리까지 동시에 요동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충격을 넘어 유가·물가·환율 등 '3고(高)'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투자 전략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진단한다.
◆ 전쟁 충격에 유가 급등…'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정세는 급격히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동 산유국들이 감산 기조를 이어온 데다 국제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이란 발전소와 에너지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을 5일간 중단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그의 발언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대응 사이에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지난 이틀간 양국이 적대행위 해소를 위한 생산적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이후 4주째 이어진 중동 전쟁이 중대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란 매체는 협상 사실을 부인했다.
뉴욕과 런던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월 9일(현지시간)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후 연일 급등락을 반복했다.
이후 중동 정세에 따라 배럴당 80달러대로 급격히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급등락을 이어왔다. 브렌트유 선물은 3월 13일(현지시간)에는 배럴당 103.14달러로 치솟은 이후 브렌트유는 19일 119달러를 찍고, "모든 군사적 공격을 5일간 유예하기로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23일 다시 100달러대 밑으로 내려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책사'로 불리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이란의 국제 안보 위협이 제거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한바 있다.
그러나 카탐 알안비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중앙군사본부 대변인은 11일 국영 TV 성명을 통해 "단 1리터의 석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국제 유가를 배럴당 200달러로 만들겠다"고 경고하며 유가 급등 우려를 키웠다.
파티흐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2일 연설에서 "이번 위기는 과거 오일쇼크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천연가스 공급 충격을 모두 합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동 긴장이 완화되면 유가가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유가 변동성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물가, 원달러 환율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월 말까지 외교적 출구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는 유가 급등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작동하는 '더블 악재'에 직면해 성장률은 0.5~0.8%P 급락, 물가 1%P 이상 급등하며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또한 3월 11일에 열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나온 중동 사태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2.0% 목표에 미칠 영향에 관해 "빨리 끝나지 않으면 마이너스 영향은 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오르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3%P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26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
이를 2월 한은이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에 적용하면 2%에서 1.7%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는 한은의 고민도 깊어졌다.
한은은 2019년부터 물가안정 목표로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제시해왔다.
2월 기준금리를 6연속 동결하며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2%로 0.1%P 높여 잡았지만,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한은으로서도 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유가의 추이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란 전쟁 발생 직후까지 국내 주요 은행들은 국민연금의 방어 수단 등을 근거로 들며 코로나 팬데믹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러한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원/달러 환율은 3월 13일 야간거래에서 달러 강세 영향으로 1500선을 뚫고 올라갔다. 4일(장중 1505.8원) 이후 7거래일 만에 1500원을 재돌파했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16일 주간거래 개장 직후 1501.0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주간거래에서 장중 1500원을 넘은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2일(고가 1500원) 이후 17년 만이다.
유가 및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 외국인 자금 이탈, 기준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의 우려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 '3高 시대' 가능성…한국 경제 회복세 흔들
금융시장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와 함께 물가와 환율, 금리가 동시에 상승하는 '3高 시대'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해 침체를 겪었던 한국 경제는 올해 들어 겨우 성장 회복 궤도에 올라선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물가와 환율, 금리가 동시에 상승하면서 경기 회복의 불씨가 다시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쟁 충격은 국내 증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는 하루 사이 지수가 두 자릿수 가까이 오르내리는 극단적인 변동 장세가 나타났다.
코스피 변동성을 나타내는 VKOSPI 지수는 코스피가 10% 넘게 급락했던 3월 4일 장중 80.37까지 치솟았다. 이는 최근 3년 내 최고 수준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곱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코스피 지수 변동 폭도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2월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충격이 전해진 이후 첫 거래일인 3월 3일 코스피는 7.24% 하락했고 다음 날인 4일에는 12.06% 급락했다.
그러나 5일과 6일에는 코스피, 코스닥 양 시장 모두 급반등했고,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는 이틀 연속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급등락 장세는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다. 하루새 급등락하는 증시를 두고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주식 시장이 아니라 코인 시장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투자자들은 변동성을 활용한 단기 차익을 노리고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투자에 집중하기도 했다.
이란 사태 이후 개인 투자자 순매수 상위 ETF의 상당수는 레버리지 상품이었다.
매일 5% 이상 급등락하는 현상이 반복되자 레버리지와 인버스에 번갈아 베팅하는,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코스콤ETF체크에 따르면 3월 9일 기준 최근 1주일간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ETF는 KODEX 레버리지로, 순매수액 7959억원을 기록했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의 일일 등락률 2배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이런 투자 방식은 변동성이 확대될수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시장이 급락할 경우 증거금 부족이나 강제 청산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신용거래를 중단하는 등 건전성 관리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4일 오전 8시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매수와 신용거래대주 신규매도를 일시 중단했다. NH투자증권은 5일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매수를 일시 중단했다.
신용거래는 주가 하락으로 담보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주식이 강제로 처분된다.
시장 급락이 이어질 경우 반대매매 물량이 한꺼번에 출회되면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고 담보가치가 대출금에 못 미칠 경우 증권사가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증권사들이 선제적인 조치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신용공여를 하는 경우에는 합계액이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빚투가 급증하면서 신용공여 합계액이 각 회사 자기자본의 100%에 달할 정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
3월 11일, 금융감독원은 황선오 자본시장·회계 부원장 주재로 국내 주요 11개 증권사 신용융자 담당 임원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벌여온 신용융자 금리 인하 이벤트나 수수료 감면 마케팅에 대해 신중한 운영을 당부했다.
황 부원장은 이 같은 마케팅에 대해 "투자자를 위험으로 부추길 수 있다"며 "투자자가 레버리지 거래의 구조와 반대매매 위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현재의 신용융자 및 반대매매 규모가 수치상으로는 관리 가능한 수준(전체 거래대금 대비 0.13%)이라 평가하면서도, 최근의 증시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는 레버리지 투자가 시장 전체의 리스크 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금융당국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투자 현장에서는 오히려 '빚을 내서라도 사자'는 베팅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금감원이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 당일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신용 매수에 나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들어 11일까지 코스피 전체 신용잔고는 약 657억원 감소하며 관망세로 돌아섰다가 이후 증가세다.
특히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신용잔고가 역대급으로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신용잔고는 2월 말 대비 불과 열흘 만인 3월 11일 6032억원(26%)이나 급증하며 2조9000억원을 넘어섰고, SK하이닉스 역시 15% 이상 불어나며 2조원대에 육박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증권사들이 신용융자 담보 관리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신용융자 추이. 자료 = 키움증권 HTS 캡처.
자료 = 한국거래소.
◆ 전쟁보다 무서운 '수급 변동성'
증권가에서는 최근 증시 급락이 단순히 전쟁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증시는 그동안 상승 속도가 빨랐던 만큼 조정 압력이 누적돼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증시 등락폭은 아시아 주요 증시보다 두 배 이상 컸다.
데이터는 그대로 하고 이미지는 바꿔야함.
3월 3∼5일 사흘간 닛케이평균주가 하루 평균 변동률은 2.86%였다. 3일(―7.24%)과 4일(―12.06%)에 기록적인 폭락을 기록하며 3∼5일 일평균 변동률이 9.64%에 달한 코스피보다 적게 움직였다. 일본은 원유 수입 중 중동산의 비중이 90%가 넘어 70% 수준인 한국보다 높지만, 증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대만 자취안(가권) 지수도 3∼5일 일평균 변동률이 3.04%였다. 시가총액이 1조8530억 달러(약 2725조 원)에 달하는 TSMC가 대만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어 코스피에서 삼성전자(우선주 포함)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다. 이란산 원유 수입의 '큰손' 중국 역시 증시는 상대적으로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상하이 증시는 2∼5일 모두 1% 이내로 오르내렸다.
특히 외국인 수급과 파생상품 거래 구조가 변동성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거래의 상당 부분은 알고리즘 매매가 차지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매매가 이뤄지다 보니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또 ETF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ETF 가운데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상품들은 특정 종목 비중 규정이나 리밸런싱 규정을 갖고 있다.
특정 기업 주가가 급등하면 규정에 따라 비중을 줄여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경우 외국인 매도는 한국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라기보다 기계적인 리밸런싱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도 변동성을 키웠다. 최근 몇 년 동안 ETF와 레버리지 상품으로 자금이 집중되면서 시장 쏠림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변동성 국면일수록 감정적 대응을 줄이고 장기적인 투자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극심한 변동성 장세 속 증시의 '파동(Swing)'을 타서 수익을 내는 '스윙 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현재의 변동성 장세에 대한 증권가의 분석을 짚어보고, 시장 변화에 기민한 큰 손 개미투자들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도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한다.
자산관리에 탁월한 PB(프라이빗뱅커), 다양한 자산을 효율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리테일 그룹의 리더, 오랜 기간 증시의 변곡점을 겪어 온 리서치센터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 현재의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 대응하는 투자 전략을 들어보는 것은 내 자산을 더욱 안전하게 불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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