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SK하이닉스가 AI 추론 인프라 시장 선점을 위해 유럽 반도체 설계 기업 세미다이내믹스(Semidynamics)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컴퓨팅 성능 중심의 기존 접근을 넘어, 메모리 아키텍처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차세대 AI 인프라 패러다임에 선제 대응하려는 행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세미다이내믹스에 투자하며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투자는 AI 추론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단순 연산 능력이 아니라, 메모리 용량과 데이터 이동 효율이라는 판단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에는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에이전트 기반 AI 확산으로 추론 과정이 길어지고, 지속적인 컨텍스트 유지가 중요해지면서 메모리 병목이 주요 제약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세미다이내믹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모리 중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AI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기존 HBM 기반 시스템 대비 수배 이상의 메모리 용량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통해 더 큰 모델과 KV 캐시, 확장된 컨텍스트를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랙당 처리 가능한 사용자 수를 늘려 토큰당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회사는 개방형 RISC-V 기반으로 설계된 자체 프로세서 아키텍처에 독자적인 ‘Gazzillion®’ 메모리 서브시스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해당 기술은 긴 메모리 접근 지연에도 시스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연 허용 구조로, AI 가속기의 성능 저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TSMC와 협력해 3나노미터(nm) 공정 기반 AI 추론 칩 테이프아웃을 완료하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는 유럽 반도체 기업 중에서도 선도적인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세미다이내믹스의 AI 아키텍처 [이미지=세미다이내믹스]
양사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프로세서와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간의 아키텍처적 결합을 강화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의 첨단 메모리 기술과 세미다이내믹스의 설계 역량을 결합해 고성능 AI 추론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공동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정희진 SK하이닉스 America 벤처 투자 총괄(SVP)은 “AI 워크로드는 본질적으로 메모리 제약적인 문제지만, 업계는 그동안 아키텍처 수준의 솔루션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했다”며 “세미다이내믹스는 이러한 제약을 고려해 처음부터 솔루션을 구축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세미다이내믹스 측도 이번 투자가 메모리 중심 AI 인프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로저 에스파사 세미다이내믹스 CEO는 “AI 인프라에서 메모리 아키텍처가 컴퓨팅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번 협력을 통해 추론 플랫폼 시장 진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미다이내믹스는 확보한 투자금을 활용해 향후 추가 테이프아웃과 시스템 수준 개발, 특히 데이터센터용 랙 플랫폼 구축에 집중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유럽 및 스페인 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약 4500만유로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단순 공급자를 넘어 AI 인프라 아키텍처 설계 단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흐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세미다이내믹스가 주관한 펀딩 라운드에 투자자로 참여한 방식”이라며 “투자 규모는 약정상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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