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K-콘텐츠의 성공이 깊어질수록 한국 제작사의 몫은 얕아지고 있다. 글로벌 자본 없인 대작 제작이 어려워지고, 제작비 회수 구조(Recoupment)에서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는 압도적이다.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낸 '오징어 게임'의 제작사는 IP 전체를 넷플릭스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제작비를 지원받았고, 로열티나 추가 수익 없이 고정 마진 만을 가져갔다.
반면, 제작비를 직접 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작사는 미국 리메이크권 협상을 직접 주도하며 글로벌 부가 수익 창출의 고리를 스스로 쥐었다. 자본에 IP를 뺏기는 구조가 고착되면 제작사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IP는 연쇄의 첫 고리일 뿐이다. 어떤 콘텐츠를 노출할지 결정하는 알고리즘, 수억 명의 행태가 담긴 데이터까지, 자본의 통제 구조는 더 깊은 곳을 향한다.
콘텐츠의 노출과 확산을 좌우하는 알고리즘은 산업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인프라다. 우리는 가치가 높아, 유출될 경우 안보와 경제 발전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특히 보호한다. 그러나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이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중심 13개 분야 70여개 기술이다. 콘텐츠 IP와 알고리즘은 그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다.
독일은 디지털 인프라 등 전략 분야에 외국인이 지분 10%만 취득해도 연방경제부가 심사하고, 영국은 국가안보투자법(NSIA)으로 지식재산권·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 인수 자체를 심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한국 법제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법의 공백은 이사회라는 내부 경로를 통해 채워진다. 국내 게임사와 엔터 플랫폼사의 지분 구조를 보면, 텐센트는 넷마블, 크래프톤, 시프트업의 2대 주주다. 이들은 재무적 투자자를 표방하지만, 주주간 계약으로 이사 추천권을 확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고 상법이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의무화하면서, 소수 지분만으로도 이사회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더 수월해졌다. 이사회에 진입해 콘텐츠 기획과 기술 파트너십에 개입할 때,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외부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콘텐츠의 방향을 조용히 비트는 것을 막지 못한다.
플랫폼 운영 데이터가 쌓이면 개인의 정치 성향과 소비 심리, 생활 패턴까지 읽힌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이 데이터 수집과 국외 전송을 규율하지만, 이사회에 들어온 외국 자본을 대리하는 이사가 회사 내부의 데이터 정책 자체를 바꾸는 것은 막지 못한다. 서버 위치나 데이터 제공 범위, 보안 체계의 결정은 경영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틱톡(TikTok) 운영사 바이트댄스에 대해 지난 2024년 강제 매각법(PAFACA)을 제정한 것도, 계약서 한 장으로 지배주주의 정책 변경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은 이미 CFIUS(외국인투자위원회) 체계 하에 위치정보·행동 패턴 등 민감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을 명시적 심사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처럼 주요국은 이미 데이터 기업을 투자 심사의 핵심 대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의 현행 외국인투자 법령은 플랫폼 기업의 이사회에 외국 자본을 대리하는 이사가 들어오는 것을 심사하지 않는다. 미국·영국·호주가 데이터 기업을 명시적 심사 대상으로 삼은 것과 대조적이다.
대응은 비례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 위에 설계돼야 한다. 우선 1단계로, 외국 자본을 대리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순간 데이터 거버넌스 정책의 사전 신고를 자동 의무화한다. 신고만으로 부족하면 2단계로, 민감 데이터 관리 권한을 기술적으로 격리한다.
위반이 반복되거나 유출 위험이 현실화되면, 3단계로 외국인투자촉진법상 국가 안전의 범주에 데이터 주권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의결권과 지분을 제한한다. 침해 강도에 비례해 단계적으로 조여드는 구조는 과잉금지원칙을 준수하는 정교한 설계이며, 그 자체로 국제 통상 소송에서의 강력한 방어 논거가 된다.
규제가 투자를 막는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독일은 투자 심사를 강화하고도 제재·조건 부과 사례가 전체의 2%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승인율을 유지한다. 모호함 대신 명확한 규칙이 자본을 안심시킨다. '우영우'가 증명했듯 IP를 지키면서도 글로벌 흥행이 가능하다. 문제는 외국 자본의 존재가 아니라 협상력의 비대칭이며, 규제는 이를 보정하는 수단이다.
데이터 규제가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 역시, 외부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내부 데이터 정책을 결정하도록 방치하는, 현재의 시장 왜곡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적이 아닌 데이터의 규모, 식별성과 프로파일링 정밀도를 심사 기준으로 삼으면 통상 마찰 우려도 피해 갈 수 있다.
K-콘텐츠는 대한민국의 수출 자산이자 데이터 안보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계약 협상력이 IP 귀속을 결정하고, 지배구조 침투가 알고리즘을 통제하며, 그 동일한 연쇄가 이용자 데이터까지 위협한다. 자본의 힘이 통제권을 결정하는 구조다. 외국 자본은 성장 동력이지만, 통제권을 잃은 성장은 사상누각이다. 번창하는 K-콘텐츠가 누구의 것인지, 지금 결정되고 있다.
정한근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정한근 법무법인 화우 고문
- 정한근 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원장
-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변인
- 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보호정책관
- 전 미래창조과학부 인터넷정책관
- 전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 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진흥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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