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수급 유입…기초 체력 무관한 특정 섹터 버블
K증시 돋보기. 사진=ChatGPT
[주간한국 조채원 기자] 국내 증시는 지난 23~26일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테마를 중심으로 한 특정 섹터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 쏠림 현상이 극에 달한 가운데, 극단적인 변동성을 겪었다. 패시브 자금의 거대한 유입과 유출이 거품을 생성, 시장 고유의 가격 조절 기능이 상실되는 왜곡 현상이 지수 교란으로 나타났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지수에 편입된 중소형 장비주 영역이다.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유동성이 제한적인 중소형주에 패시브 자금이 기계적으로 유입, 기업의 실제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코스피가 지난 23일 큰 폭의 조정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섹터의 주요 ETF들은 지수 추종 자금의 기계적 매도가 겹치며 하루 만에 10%대 급락하는 사태를 맞았다.
이는 시가총액 규모 대비 과도한 패시브 자금이 특정 종목군에 고여있음을 방증한다. 투자자가 ETF를 매수하거나 매도할 때 자산운용사는 지수 구성비율에 따라 시총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까지 강제로 사거나 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입된 패시브 자금은 개별 기업의 가치 분석 기능을 약화시켰으며 급격한 자금 유출시 개별 종목이 감당해야 할 하락 압력을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시장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무차별적 수급이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 셈이다.
◇낡은 지수 방법론…특정 종목 쏠림 심화
본지 분석 결과, 현재의 자산 가격 왜곡을 심화시킨 주범으로 과거에 설계된 낡은 지수 산출 방식과 방법론이 지목된다. 국내 반도체 시장을 대표하는 주요 ETF들의 포트폴리오를 뜯어보면 특정 대형주 두 종목이 지수 전체를 좌우하는 편중된 구조가 명백히 드러난다.
주요 반도체·시장대표 ETF인 TIGER 반도체TOP10·KODEX 반도체·TIGER MSCI Korea TR을 보면 상위 2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비중이 각각 64.64%·65.65%·67.84%에 달한다.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시장대표지수에서도 지난 24일 기준 삼성전자(34.48%)와 SK하이닉스(31.04%)의 합산 비중이 65.52%에 달해 같은 왜곡이 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이는 자금의 3분의 2가량이 단 두 기업의 주가 추이에 연동된 구조로, 소수 대형주가 지수 전체의 변동성을 좌우하는 현상이 고착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쏠림은 종목별 ETF 보유 비중에서 확인된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가 지난 4월 29일 기준으로 집계한 반도체 ETF의 종목별 보유 현황을 보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ETF 보유 금액이 각각 8조 4100억원·7조 2800억원으로 가장 크지만, 유동 시가총액(실제 거래 가능한 주식 기준 시가총액) 대비 보유 비중은 각각 1.2%·0.7%에 그친다. 반면 한미반도체(29.2%)·DB하이텍(29.1%)·ISC(28.8%)·리노공업(27.8%)·이오테크닉스(27.1%)·원익ISP(25.9%)·HPSP(20.1%) 등 중소형 장비주는 유동 주식의 5분의 1 이상을 반도체 ETF가 보유하고 있다. 보유 금액은 대형주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지만 유동 주식 대비 노출도는 대형주보다 20배 이상 높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중 불균형이 실제 수급 충격으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TIGER 반도체 구성 종목의 지난 19일까지 1주일 수익률을 보면 한미반도체(-18.28%)·이오테크닉스(-18.55%)·원익ISP(-14.89%)·HPSP(-20.84%) 등 장비주가 일제히 두 자릿수대 하락을 기록했다. 반면 지수 내 비중이 가장 큰 SK하이닉스(+28.56%)와 삼성전자(+9.77%)는 같은 기간 오히려 상승해 종목 간 탈동조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ETF 보유 비중이 높은 종목일수록 펀드가 설정되거나 환매될 때 작동하는 기계적 매수·매도 룰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주가의 기초 체력과 무관한 오버슈팅(일시적 과대 상승)과 언더슈팅(일시적 과대 하락)을 만들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지수의 산출 원리가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돕기보다 쏠림을 가속하는 촉매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패시브 자금 거대화 액티브 시장 기능 무력화
패시브 자금의 규모가 액티브 자산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해지면서 ‘가격 발견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시브 ETF 섹터 내 종목 간 주가 동조화 현상이 극단적으로 심화해 같은 지수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이 함께 오르 내리는 현상이 지속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 고유의 위험과 성과가 주가에 반영되지 않아 주가 왜곡을 심화한다.
TIGER 반도체TOP10의 순자산총액은 11조 6075억원에 달하고 KODEX 반도체(6조 6830억원)를 더한 패시브 자금의 영향력은 시장 전체를 좌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로 지난 26일 KODEX 반도체의 하루 거래대금은 1조 1345억원으로 최근 1년 평균(3158억원)의 3.6배에 달해 단기간에 자금이 몰리는 양상을 뚜렷하게 보였다.
액티브 투자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금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펀더멘털이 우수한 기업이라도 지수에 편입되지 못하면 소외되는 반면, 실적이 정체된 기업이라도 대형 지수에 묶여있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는 모순이 매일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지수 산출 방식의 투명화와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수 산출 방식의 주기적 재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을 보완해 기업의 내재 가치나 수익성 지표를 기준으로 비중을 산정하는 동일가중 또는 펀더멘털가중 형태의 보완형 상품을 대거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채원 기자 cwlight2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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