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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T큐레이션] 화웨이 인사이트 딜레마

미국의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화웨이가 중국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자율주행에 17조원을 베팅하는 한편 5G 인프라에서 노키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도 높은...

[IT큐레이션] 화웨이 인사이트 딜레마

미국의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화웨이가 중국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자율주행에 17조원을 베팅하는 한편 5G 인프라에서 노키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도 높은 제재에도 그 예봉이 꺾이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제재 대상이자 잠재적 위협으로 분류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 구도가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분리되는 흐름이 굳어진다면 두 생태계 모두에 발을 걸쳐야 한다. 셈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의 부상은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할 변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최진홍 기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화웨이의 올해 AI 칩 부문 매출이 약 120억달러(약 17조73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75억달러 대비 60% 늘어난 수치다.

3월 양산에 들어간 최신 AI 프로세서 어센드 950PR이 실적을 견인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가 엔비디아 대체재로 이 칩을 대거 발주한 결과다.

엔비디아의 공백은 미국과 중국 양측의 규제가 맞물린 결과다. 실제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3월 H200 칩의 중국 수출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공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장 미국 규제 당국은 중국 내수용으로만 사용할 것을 요구한 반면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화웨이를 비롯한 토종 칩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두 규제가 충돌하면서 엔비디아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화웨이가 엔비디아의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어시스트에 나섰다.

당장 딥시크는 4월 24일 차세대 모델 V4 프리뷰 버전을 공개하며 어센드 950PR에 최적화된 형태로 추론 성능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학습 단계에는 여전히 엔비디아 칩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서비스 운용 영역에서 화웨이와 협력한다는 설명이다. V4 발표 직후 바이트댄스와 텐센트, 알리바바가 어센드 950PR 구매 계약을 위해 화웨이에 잇달아 접촉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자율주행 영역에서도 화웨이의 행보는 공격적이다. 진위즈 화웨이 스마트카 솔루션 사업부 CEO는 4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첸쿤 기술 콘퍼런스에서 "향후 5년간 컴퓨팅 파워에 700억~800억위안(약 13조6000억~15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화웨이 기술 컨퍼런스. 사진=연합뉴스

올해만 스마트 주행 연구개발에 18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화웨이의 자율주행 시스템 첸쿤 플랫폼의 누적 주행 데이터는 이달 초 100억km를 돌파했고 25개 자동차 브랜드 50여 개 차종, 약 170만대에 탑재됐다. 협력 대상에는 중국 업체뿐 아니라 아우디와 도요타도 이름을 올렸다.

통신장비 시장 지형도 화웨이를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이 4월 30일 발표한 5G 네트워크 인프라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에릭슨이 6년 연속 평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화웨이와 노키아가 뒤를 잇는 3강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ZTE가 공동 4위권을 형성하며 상위 5개 기업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과점 구조다. 클라우드 기반 네트워크와 AI 자동화, 오픈랜 등 새로운 경쟁 축이 부상하면서 기존 사업자 간 격차가 다시 짜일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점이다.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화웨이는 선공에 나섰다. 화웨이는 4월 20일 가로형 폴더블폰 퓨라 X 맥스를 공개했다. 7월 삼성전자의 갤럭시 Z 와이드 폴드, 9월 애플의 첫 폴더블폰 출시가 예고된 상황에서 한발 앞서 시장의 문법을 새로 쓰겠다는 포석이다. 시장조사기관 스마트애널리틱스글로벌은 올해 폴더블폰 시장이 전년 대비 3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한국의 위치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 중국 AI 칩 시장 규모가 670억달러(약 98조8900억원)에 이르며 이 가운데 86%를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현지 기업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의 AI 칩 자급률 확대로 현지 특수 메모리 수요는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중국 내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는 글로벌 전체 물량의 10~15% 수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엔비디아 공급망 약화라는 단기 악재인 동시에 화웨이 생태계 내 신규 수주라는 새로운 기회가 동시에 열리는 셈이다.

실제로 업계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통신·반도체 업계는 미국 주도의 보안 우려와 제재 흐름 속에서 화웨이와의 거리두기를 유지했으나, 글로벌 AI 표준이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양분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두 생태계 모두에 메모리와 부품, 통신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로 해진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보다 시장이 분리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며 "어느 쪽에도 배타적으로 묶이지 않는 공급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협력의 명분도 쌓이고 있다. 화웨이가 자율주행과 AI, 통신장비 영역에서 축적해온 데이터와 기술 자산은 한국이 강점을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 생태계와 보완재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구도에 갇히기보다는 화웨이가 주도하는 중국 AI 생태계 안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을 선점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라는 진단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 차원의 외교적 부담이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지만 민간 기업 단위의 기술 협력과 부품 공급 채널을 다변화하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화웨이의 부상은 곧 한국이 이 변화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자세를 바꿀 수 있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성과의 질이 달라질 전망이다. 시장이 분리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한국 반도체와 통신 산업은 양쪽 모두에서 입지를 잃을 수 있다.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자, 시간이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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