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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X·DX·MICE' 무슨 뜻?…한글날 100돌에도 어려운 대구·경북 행정언어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았지만 대구·경북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현장에서는 영어와 외래어, 영문 약어가 여전히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AX·DX·MICE' 무슨 뜻?…한글날 100돌에도 어려운 대구·경북 행정언어

도시브랜드부터 부서·정책명까지 영어 확산…시민 눈높이 공공언어 개선 과제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노천강당에서 열린 ‘제580돌 한글날 기념 한국어 퀴즈대회·외국인 유학생 잔치한마당’에 참여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글로 적은 자신의 이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았지만 대구·경북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현장에서는 영어와 외래어, 영문 약어가 여전히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알리는 브랜드부터 행정조직 명칭, 주요 정책과 사업 이름까지 영어식 표현이 확산하면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언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미래산업 분야에서는 AX·DX·MICE 등 전문용어가 별다른 설명 없이 행정 명칭에 사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해외 홍보와 산업 경쟁력을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정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8일 대구시와 경북도, 일선 시·군의 공식 홈페이지와 행정조직도, 정책·사업 자료 등을 살펴본 결과 영어와 외래어 사용은 도시브랜드뿐 아니라 행정조직과 신산업 정책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브랜드다.

대구시는 시정슬로건으로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를 사용하면서 영문 ‘POWERFUL DAEGU’를 함께 내세우고 있다.

포항시는 ‘위대한 포항, 더 나은 내일’을 시정슬로건으로 사용하고 민선 9기 시정 비전에는 ‘All Good POHANG’을 채택했다.

구미시는 ‘YES GUMI’를 도시브랜드로 사용한다. ‘YES’에는 Your·Exciting·Smart라는 의미를 각각 담았다.

경주시는 ‘Golden City’를, 봉화군은 ‘숲속도시 봉화’와 함께 ‘FOREST CITY BONGHWA’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경북도의 도정슬로건은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한글 중심이다.

상주시의 ‘저력있는 역사도시 중흥하는 미래상주’, 예천군의 ‘군민과 함께 성장하는 예천’, 성주군의 ‘하나되는 성주, 다시뛰는 성주’, 고령군의 ‘가야가 빚은 고령’도 우리말을 중심으로 지역의 정체성과 비전을 표현한 사례다.

문제는 영어식 표현이 도시 홍보에 그치지 않고 시민 생활과 밀접한 행정조직과 정책 명칭에도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시에는 AI정책과, 미래모빌리티과, 문화콘텐츠과, 섬유패션과, 도시디자인과 등이 설치돼 있다. ‘맑은물하이웨이추진단’도 운영하고 있다.

포항시 역시 바이오미래산업과, 배터리첨단산업과, 디지털융합산업과, 건축디자인과, 마이스산업과, 컨벤션건립과, 그린웨이추진과 등 외래어를 포함한 부서 명칭이 적지 않다.

마이스(MICE)는 기업회의·포상관광·국제회의·전시 등을 포괄하는 산업 용어다. 관련 산업 종사자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뜻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책과 사업 명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포항시는 ‘AI 컴퓨팅 센터’, ‘AI 융합실증 허브’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경북도는 구미·포항을 중심으로 로봇산업을 육성하면서 ‘제조 인공지능 전환(AX)’, ‘K-로봇 메가클러스터’ 등의 표현을 공식 자료에 사용한다.

철강산업 분야에서도 AX(인공지능 전환), DX(디지털 전환), AI 융합실증 허브 등이 등장한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지역거점 AX혁신 기술개발사업’도 비슷한 사례다.

지역 행사에서도 영어 사용이 이어지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 7일 대·중견기업과 중소·창업기업의 기술 협력을 위한 ‘GUMI Connect Summit 2026’을 개최했다. 행사 자료에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우리말인 ‘개방형 혁신’을 함께 표기했다.

이처럼 영어식 명칭에 우리말 설명을 병기하는 방식은 전문용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행정 명칭 자체가 영어와 약어 중심으로 구성되면 별도의 설명 없이는 정책의 목적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의 쉬운 우리말 사용은 단순한 권고에 그치지 않는다.

국어기본법 제14조는 공공기관 등이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구시는 2019년 ‘대구광역시 국어 진흥 조례’를 제정했다.

경북도도 2015년 ‘경상북도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2023년 ‘경상북도 공공언어 진흥 및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로 전부 개정했다.

경북도 조례는 공문서 작성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우리말을 사용하고 외국어와 외래어, 신조어, 줄임말을 가려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 명칭과 정책명, 사업명, 상징, 구호를 정할 때도 같은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기존 외국어 명칭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하도록 했다.

우리말 사용이 정책 전달력을 높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립국어원이 2021년 실시한 ‘공공기관 정책명 개선을 위한 실태 조사’에서는 중앙·지방 공공기관 64곳의 정책명 1273개를 분석하고 이 가운데 50개를 선정해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이해도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정책명에 대한 이해도는 한글 표기가 가장 높았으며 한글·로마자 병기, 로마자 단독 표기 순으로 나타났다. 정책 홍보 기여도 역시 한글 표기가 가장 높았다.

영어 중심의 도시브랜드 사용은 대구·경북만의 현상도 아니다.

2024년 발표된 ‘한국의 도시브랜드 슬로건의 언어적 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방자치단체 도시브랜드 슬로건 90개 가운데 영어만 사용한 사례는 18개(20%),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한 사례는 20개(22%)였다.

전국 17개 시·도의 공식 표어 가운데 로마자를 그대로 사용한 곳도 8곳(47.1%)에 달했다.

서울의 ‘Seoul, My Soul’, 부산의 ‘Busan is good’, 인천의 ‘all ways INCHEON’, 울산의 ‘ULSAN THE RISING CITY’, 경기도의 ‘GO GREAT, GYEONGGI’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외국어 사용을 모두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관광객 유치와 해외 투자 홍보를 위한 도시브랜드에서는 영어가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AI·로봇·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문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해외 홍보용 브랜드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 명칭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우리말 설명을 함께 제공해 시민의 이해를 높이는 방식이 요구된다.

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쉬운 국어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공공언어 점검과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아 대구·경북 지자체가 도시브랜드와 행정조직, 정책·사업 명칭의 외국어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시민이 이해하기 쉬운 공공언어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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