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동하는 사물들’ 사진전
구본창 등 사진가 9인 기획전
유리병·보자기 등 ‘정물 사진’
고유의 시선·기법으로 재해석
AI보정 거치지 않은 작품 선봬
“보이지 않는 사물의 서사 담아
사진이란 무엇인가 질문 던져”
조성연 작가의 ‘사라지지 않고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심장’은 콘크리트 조각, 철근, 전선, 식물의 잔해 등을 재조합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 설명하는 구본창 작가.
“정물 사진은 사물의 본질과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우린 여전히 찍습니다. 사물이 가진 서사 즉,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삶과 죽음을요.” (구본창 사진작가)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구 작가가 8명의 작가를 초청, 독창적 세계를 품은 정물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진동하는 사물들(Objects in Oscillation)’. 구 작가를 포함해 구성연·김경태·김수강·박찬우·정정호·정희승·조성연·조선희 작가 총 9인이 참여한 기획전으로, 과도한 디지털 후보정이나 AI 생성·교정을 거치지 않은 작업을 선보인다. AI가 정교한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대, 이 전시는 어떤 의미일까. 사진만의 고유한 가치란 무엇일까.
구본창 작가의 ‘컬렉션 18’은 카페 점원이 주문을 받고 난 색연필을 무수히 던져 꽂아 생겨난 흔적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를 기획한 구 작가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전시”라며 “사진에는 일회성 AI 이미지에는 없는 많은 시간과 사유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세계를 만들어 온 작가들을 눈여겨봤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정물 사진(still life)은 기본적으로 ‘고요한 순간’, 다시 말해 ‘정지된 순간(still moment)’을 포착한다. 그러나 여기에 작가만의 고유한 시선과 기법, 그리고 고민을 거듭한 시간이 담기면서, 수초 만에 뚝딱 생성되는 AI 이미지에선 결코 찾을 수 없는 감흥이 있다. 예컨대, 구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오브제’ 연작은 새틴 천 안감의 빈 상자들을 촬영한 작품인데, 내용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음각으로 드러내, ‘부재’를 ‘존재’로서 드러낸다. “빈 상자로 있었던 것과 사라진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했다”고 구 작가는 설명했다. 김수강 작가 역시 유리병과 보자기 등 평범한 사물을 촬영했지만, 19세기 후반 개발된 검프린트 기법을 적용해 독특한 깊이와 질감을 연출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흐려진 그 어디쯤에서 작품은 ‘특별한 표정’을 짓는다. 또 김경태 작가의 ‘브라스 핵스 너트’ 연작도 흔한 사물 중 하나인 너트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김 작가는 직경 8·11·14㎜인 아주 작은 너트들을 가까이에서 수백 번 촬영한 후, 선명한 부분만을 겹쳐 합성했다. 이때 표면의 무늬와 상처는 더욱 정교하고 정밀하게, 전체 형태는 극대화한다. ‘정물 사진’에서 예상치 못한 무게감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조선희 작가의 ‘블랙 이마고’는 시든 꽃에 검은 안료를 입혀 촬영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연예인 인물 사진으로 잘 알려진 조선희 작가의 ‘플래닛’ 연작도 흥미롭다. 조 작가는 마치 과일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검정 배경 속에 마른 과일을 가둬 소멸에 대해 탐구한다. 그는 “과일을 얼굴이라 생각하고 인물화를 찍을 때처럼 눈높이에서 촬영했다. 오브제(사물)들을 하나의 객체이자 나 같은 주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욕망과 소멸이 한데 엉긴 작품도 있다. 바로 구성연 작가의 ‘설탕’ 연작. 구 작가는 입맛을 다시게 하는 황금빛 설탕으로 실제 자신의 수집품을 정교하게 조각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이 녹아 흘러, 없어지기 직전에 촬영했다. 달콤하고 반짝이며, 끈적한 인간의 욕망이다. 작가는 “소멸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성연 작가의 ‘설탕’은 욕망을 형상화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이 밖에,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자기 서사를 사물로 재배치한 정정호 작가,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사진으로 표현한 정희승 작가, 조선시대 ‘책거리’를 차용해 다시점으로 촬영한 박찬우 작가가 사람의 ‘손맛’이 무엇인지, 왜 여전히 손맛 담긴 사진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지, 사유와 경험이 빚은 ‘예술 사진’으로 증명한다. 전시는 내달 19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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