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다시 정원으로
이병철 산이정원 원장
2026년 08월 23일(일) 22:00
지금 인류는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의 신기루에 매료되어 있지만 당장 우리가 발을 디딘 지구는 역대급 폭염과 기후 위기로 타오르고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기술에게 답을 물어왔다.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고,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며,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AI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숲을 분석할 수 있어도 숲이 될 수는 없다. 꽃이 피는 시기를 계산할 수 있어도 꽃을 피우지는 못한다. 생명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어도 생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수억 년간 이어지던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불과 260여 년 전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인류의 탐욕이 초래한 환경 파괴는 이제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재앙이 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은 대신 생존의 토대인 ‘자연’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거대한 결핍의 시대를 마주 하고 있다. 자연은 46억 년 동안 생명을 유지하며 수많은 답을 만들어 왔다. 숲에는 중앙통제실이 없지만 질서가 있고, 나무는 경쟁하면서도 함께 살아간다. 흙과 물, 바람과 곤충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태계를 완성한다. 연결과 순환, 공존과 회복. 이것이 자연이 인류에게 가르쳐 준 가장 오래된 지혜인 것이다.
정원(Garden)의 어원은 인류가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 에덴과 파라다이스에 닿아 있다. 비극적이게도 이 평화로운 단어들의 고향은 현재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갈망하고 생명과 교감하도록 진화해 온 생태적 존재, 즉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살아가는 현대의 삭막한 도시에 파릇한 초록빛 정원을 가져오는 행위는, 결코 개인의 단순한 취미 활동이나 도시 미관을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한 장식용 조경에 머무를 수 없다.
그것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인간다운 삶의 존엄성을 간신히 회복하고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세계는 이제 AI 시대를 넘어 NI(Nature Intelligence)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의 경쟁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지혜에 있다.
기술은 속도를 만들지만 자연은 방향을 만든다. 기술은 인류의 생존을 연장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드는 것은 자연이 수십억 년 동안 보여준 공존과 순환, 회복의 원리를 얼마나 익히고 실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문명 속에 구현하는 국가와 사회가 미래를 이끌게 될 것이다.
최근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 대한민국 AI G3 도약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국가 AI 컴퓨팅 센터’가 첫 삽을 떴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국내 AI 생태계의 심장이 남도에 생긴 것이다. AI컴퓨팅센터를 품은 솔라시도에는 산이정원이 있다. 많은 정원들이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과 사업성에 몰두할 때 산이정원은 NI 캠퍼스 (Nature Intelligence Campus)에 집중하며 정원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꽃으로 가득한 테마파크가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정원을 그려보고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NI의 다양한 역량들을 담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회복에 있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진 사회가 아니라 더 건강한 생태계를 가진 사회가 오래 지속된다.
현대 도시문명을 대표하는 뉴욕이나 싱가포르 같은 대도시가 정원을 만드는 이유는 결국 미래는 기술만으로 설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는 생명을 이해하는 문명만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은 단지 자연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에게서 배우는 학교이며, 인간과 기술, 생명이 함께 살아갈 질서를 실험하는 플랫폼이다. 결국 문명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이다. 정원은 그 생각을 심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며 어쩌면 가장 미래적인 방식이다. 대자연(Mother Nature)의 거대한 품 속에서 정원은 지친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내일이라는 푸른 새싹을 조용히 키워내는 곳이다. 미래정원은 우리가 지배당하던 회색 공간을 치유와 상생의 공간으로 바꾸는 위대한 시작이 될 것이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기술이고 NI는 인류의 미래를 확장하는 철학이다. 기술은 속도를 만들지만 자연은 방향을 만든다. Nature Intelligence(NI)는 기술과 생명, 산업과 생태를 연결하는 새로운 문명의 기준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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