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삼성서울병원 국제진료센터 김형진 교수.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치료 이후 질환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의료가 이제는 질병을 미리 예측하고 위험을 낮추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자리하고 있다. 건강검진 영역에서 AI는 위험군을 선별하고, 판독을 정교화하며, 검진 이후 맞춤형 관리까지 연결하는 도구로 빠르게 확산되는 흐름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기대와 함께 경계도 동시에 제기된다. AI가 건강검진의 정밀도와 효율을 끌어올리는 건 분명하지만, 높은 정확도 수치만으로 기술 신뢰성을 단정하거나 AI가 포착한 이상 신호를 곧바로 진단으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열린 '의료 패러다임의 대전환, AI 건강검진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에서 삼성서울병원 국제진료센터 김형진 교수는 AI 건강검진을 둘러싼 대표적 오해를 짚으며, 기술의 진보 못지않게 이를 해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진 교수는 "AI가 피부암 진단 정확도에서 의사를 능가했다거나, 단 몇 초 만에 폐암을 발견하는 AI가 등장했다는 기사 헤드라인은 틀린 말은 아니다"라면서도 "그 문장이 담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검진 현장에서 AI의 적용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검진 전 단계에서는 대상자 선정과 위험군 발굴을 통해 검사 항목을 최적화하고, 검진 과정에서는 내시경, X선, 안저영상, MRI, 심전도, 체형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화된 판독을 지원하며 검사자 간 편차를 줄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검진 이후에도 행동지침 제시와 개인 맞춤형 사후관리 설계에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숙련된 경험에 정밀한 데이터 분석이 더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수검자 입장에서는 질환을 더 이른 시점에 발견해 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AI 건강검진이 '치료 중심 의료'에서 '예측·예방 중심 의료'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확도 90% 이상'과 같은 수치에 대한 과신부터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논문이나 홍보자료에 제시되는 높은 정확도는 대개 단일 병원, 선별된 데이터, 최적 장비, 통제된 환경에서 도출된 결과인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 임상 현장은 병원별 장비와 프로토콜, 환자군 특성이 달라 동일한 성능이 재현되지 않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정확도가 몇 퍼센트라는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환경에서 검증된 결과인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며 "병원이 달라지면 장비와 촬영 조건이 달라지고, 환자군의 인종·연령·동반질환 분포가 달라져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분포 차이(Distributional shift)'는 연구 환경과 실제 임상 환경 사이의 간극을 의미한다. 통제된 조건에서는 높은 성능을 보이더라도, 현실에서는 다양한 변수로 인해 정확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단일 연구에서는 92% 수준의 정확도가 보고됐지만, 83개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평균 정확도가 51.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npj Digital Medicine 2025년 결과도 제시됐다. 또한 2025년 JAMA Network Open에서는 FDA 허가를 받은 AI 의료기기 9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임상 연구가 공개된 사례는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일부는 임상 연구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허가 여부만으로 임상적 검증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제기된 문제는 '발견이 곧 진단은 아니다'는 점이다. AI가 제시하는 결과는 상당수 경우 최종 진단이 아니라, 임상적으로 주의가 필요한 부위를 표시하거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표시(flagging)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AI는 확정 진단을 내리는 도구라기보다, 의료진이 확인해야 할 영역을 먼저 표시해주는 기능에 가깝다"며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질병 확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간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AI가 이상을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질환이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알림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불필요한 검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교수는 "AI가 제시한 내용을 근거로 특정 질환을 의심하며 검사 항목까지 정해 병원을 찾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며 "이상 소견을 곧바로 확정 진단처럼 받아들이는 인식은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항 보안검색에서 경보음이 울리면 추가 확인을 거치듯, AI가 표시한 결과 역시 의료진의 검토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위양성 문제는 건강검진 영역에서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AI가 포착한 이상 신호가 실제 질환과 무관한 경우에도 CT 등 추가 검사나 침습적 검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과 신체적 부담, 심리적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영국 NHS에서는 Anima Health AI 도구 'Annie'가 환자의 의무기록에 사실과 다른 질환과 병력, 투약 이력을 생성했고, 의료진이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저장하면서 환자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는 일이 발생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고령자나 의료정보 이해도가 낮은 환자일수록 이러한 오류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위양성은 단순한 오진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와 부담을 유발할 수 있다"며 "추가 확인 단계와 최종 진단 단계를 명확히 구분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 쟁점은 '편향(bias)'이다. AI는 편향을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기존 데이터에 포함된 편향을 그대로 학습해 재현하는 특성을 가진다. 의료 접근성, 경제력, 인종 등 다양한 요소가 데이터에 반영돼 있을 경우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AI는 편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습한다"며 "데이터에 포함된 사회적 불균형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가 체계에 대한 구조적 문제도 거론됐다. 현재 AI 의료기기 상당수는 FDA의 510(k) 경로를 통해 허가를 받고 있다. 기존 제품과의 '실질적 동등성'만 입증하면 승인되는 구조로, 충분한 임상 검증 없이 시장에 진입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FDA 허가 AI 의료기기 950개를 분석한 결과, 60개 제품에서 182건의 리콜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43%는 허가 이후 1년 이내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AI 모델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허가 당시와 실제 사용 시점의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논의는 결국 책임 문제로 연결됐다. AI가 진단을 보조하더라도, 현행 제도에서는 해당 기기를 사용하는 의료인이 책임을 지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반대로 오진이나 위해 발생 시 개발자, 제조사, 의료기관, 의료인 가운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김 교수는 "AI 오류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발자, 기업, 의료기관, 의료인 가운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충분히 정리돼 있지 않다"며 "오히려 사람이 책임을 기계에 넘기려는 태도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AI의 '블랙박스' 특성도 한계로 지목된다. 입력과 출력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사이 판단 과정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류 발생 시 원인 규명과 교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됐을 때 교정이 어렵다. 물론 초창기 모델보다는 지금 AI 기술이 굉장히 발전해 오류가 많이 줄고 있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AI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AI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기술 경쟁보다 '질문'의 중요성이 커진다며, 환자와 의사, 의사 간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AI 건강검진에 대한 오해는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검증되지 않은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며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은 비판적 사고와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도입으로 효율이 높아져도 그 시간이 환자와의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진료량 확대에 쓰일 수 있다"며 "환자와 의사, 의사 간 커뮤니케이션을 더 강화하고 질문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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