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의 독해
ABC뉴스=강현 기자 / 생성형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드는 시대다. 이제 작가와 창작자들에게 남겨진 질문은 단순하다. AI에 밀려날 것인가, 아니면 AI를 도구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려는 책이 바로 '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스토리 작법서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탄생의 후속작으로, 드라마 프로듀서 출신 스토리텔링 연구자 김태원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창작 방법론을 제시한다.
김태원은 한국 드라마사에 이름을 올린 주요 작품들을 기획하거나 만든 제작자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올인, 주몽, 선덕여왕, 드림하이 등 대중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인정받은 작품들에 참여하며 현장에서 스토리의 구조와 힘을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그의 전작이 스토리 구조 이론을 체계화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그 이론을 AI와 결합한 실전 창작 매뉴얼에 가깝다.
플롯은 AI에게, 후크는 인간에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AI가 창작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일부 영역을 맡는 협력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특히 스토리 창작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로 꼽히는 ‘구성’을 AI가 효과적으로 보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저자가 개발한 '4막-24블록 스토리텔링 구조’다. 이야기의 전개를 네 개의 막과 스물네 개의 서사 블록으로 세분화해 설계하는 방식인데, 이 구조를 AI에 적용하면 플롯 설계가 매우 빠르고 정교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실제로 생성형 AI인 클로드(Claude)와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브레인스토밍부터 스토리 완성까지의 과정을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프롬프트를 제시하고 AI가 응답하면, 다시 인간이 판단과 수정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AI와 협업하는 실제 창작 워크플로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AI 시대에도 남는 인간의 영역
그러나 저자는 AI의 능력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AI가 소재와 구성, 심지어 집필까지 한다면 인간 창작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태원의 답은 비교적 분명하다. 플롯은 논리의 구조이기 때문에 AI가 잘 처리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욕망’과 ‘후크’는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왜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끌리는지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AI 사용을 둘러싼 윤리 문제다. 많은 창작자들이 “AI의 도움을 받은 작품을 내 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주저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AI를 숨기지 말고 협력자로 공개하라고 조언한다. 과거 멘토나 코치에게 도움을 받았듯, AI에게도 창작의 크레딧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실제로 AI에게 맡겨졌다. 저자가 방향을 조율하고 수정 과정을 거친 뒤 AI가 작성한 원고를 그대로 실었고, 그 과정 전체를 독자에게 공개했다. 이는 AI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서를 넘어 스토리의 본질로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AI 활용 기술서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의 본질로 돌아간다. 결핍과 욕망, 공감과 진실이라는 이야기의 근원적 요소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반복해 강조하는 말도 인상적이다. “AI 시대는 1인 창작자가 스튜디오가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거대한 제작 시스템 없이도 개인이 아이디어 하나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은 단순히 AI 사용법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AI라는 거대한 기술 변화 앞에서 창작자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는 작가에게는 새로운 전략을, 아직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출발점을 제시한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다. AI는 창작의 적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대를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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